차범석(1924~2006)의 ‘산불’은 6·25전쟁의 비극을 그린 사실주의 희곡이다. 1963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작품으로 민족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객관적 시각에서 조명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산골 마을에 빨치산에서 도망친 규복이라는 청년이 숨어든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우연하게도 북한군이 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했다.

전쟁으로 과부들만 남은 산골 마을은 수시로 인민군과 국군 치하가 바뀌면서 대립이 지속된다. 규복은 점례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대밭에서 숨어 지내는데, 사월이라는 젊은 여인이 이를 알게 된다. 얼마 후 사월이가 규복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 사람은 위험한 관계에 직면한다. 뒤이어 운명의 장난처럼 공비 토벌 작전이 개시된다. 대밭에 숨어 있던 규복은 국군이 지른 불을 피해 도망가다 총살을 당하고, 사월이는 양잿물을 마신다.

최근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7140㎡) 면적의 735배에 이르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1996년 고성 산불, 2005년 양양 산불처럼 강원도 산불은 봄철이면 늘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영서 지방에서 영동 지방으로 부는 국지풍인 ‘양간지풍’(讓杆之風)에서 원인을 찾는다. 태백산맥 동쪽 양양과 고성(간성)으로 불어오는 양간지풍은 고온건조한 데다 풍속이 빠르다. 남쪽의 고기압과 북쪽의 저기압으로 형성된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에너지를 동반하는데 ‘불을 몰고 온다’ 하여 ‘화풍’(火風)으로도 불린다. 이번 화재도 거센 바람으로 불씨가 번진, 이른바 ‘비화’(飛火) 탓에 피해가 컸다.

화재 원인을 두고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촛불 정부인 줄 알았더니 산불 정부’라는 발언을 해 비난에 휩싸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에서 위기 대응 컨트롤 타워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이석(離席)을 막아 논란이 됐다.

다시 희곡 ‘산불’을 언급하자면, 불타는 대밭과 마을은 이데올로기 전쟁에 희생당한 민초들을 상징한다. 국가 재난마저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행태는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나 다름없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 민심의 불씨가 ‘들불’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바람(風)은 무섭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