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음력 10월 28일, 71세의 노학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고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조선이라는 500년의 유서 깊은 나라가 망해 버린 1910년으로부터 7년째이던 그해. 국권을 회복하여 왜놈들을 물리쳐 나라를 되찾고 공자·맹자의 유교 사상으로 뭉친 동방 예의의 나라를 다시 세워, 삼천리금수강산을 되살리자는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운명해야 했으니, 그 한을 어떻게 안고 가셨을 것인가.

송사에 대한 공식 기록인 ‘송사선생연보’(松沙先生年譜)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어떤 인물이었던가를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대목이 있다. “선생의 장례에 글을 지어 제문(祭文)으로 바친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각자가 자신이 아는 바의 깊고 옅음에 따라 기술했다. 그러나 ‘대현(大賢)의 친손자로 가문의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도학(道學)·문장(文章)·절의(節義)를 한 사람의 몸에 합성(合成)하여 당대의 우뚝 솟은 유종(儒宗)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라는 글이 있다.

왜 이런 인물 평가가 나왔나를 설명하면 간단하다. 대현의 손자라는 말부터 밝혀 보자. 조선 500 년 동안 퇴계·율곡과 같은 동등한 유학자를 꼽자면, 한말의 노사 기정진(奇正鎭)이 있다. 노사는 독창적인 성리학의 학설과 위정척사 이론의 최고봉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이었다. 송사는 바로 그분의 친손자였으니 당연히 대현의 손자로서, 그 할아버지의 학문과 전통을 넉넉하게 계승한 학자였다는 것이다. 유학자로 ‘대현’(大賢)의 지위에 오르려면 의당 도학·문장·절의라는 유학의 가치를 실현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또한 그런 사람만이 향유하는 호칭이었으니, 송사야말로 이와 같은 모든 능력을 갖춘 대현의 한 분이었음이 분명하다.

송사는 헌종 2년인 1834년 음력 8월17일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대유이고 대현인 할아버지 노사 선생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뛰어난 재주와 근면한 품성으로 학문에 돈독하여, 젊은 시절에 할아버지를 이을 학자로 온 나라에 명성이 높게 울려 퍼졌었다. 마침내 할아버지의 학문을 통째로 익혀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참봉 벼슬에도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34세 때 노사가 세상을 뜨고 노사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노사를 이은 학자로 옹립되어 전국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날로 변하고 조선은 국력이 기울면서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해인 그의 나이 37세에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다음 다음해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나라의 운명에 불길한 징조만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49세에는 마침내 동학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바뀌는 국난에 들어갔다. 송사는 전통 유학자로 동학에는 찬성하지 않았으나 그때 큰 난리는 결국 청일전쟁을 유발하여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바로 이어서 을미년 민비 시해 사건이 발발하자, 반일정신이 치솟으며 민심이 흉흉하게 되었다. 더구나 단발령까지 내려져 전통을 고수하던 송사는 바로 나라에 상소를 올려 모후를 시해한 원수들을 처단하기를 요구하고, ‘머리를 자르고 살아남기보다는 차라리 머리를 보존하고 죽겠다’(與其斷髮而存 寧保髮而亡)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 주기도 했다. 나라는 외세에 농락당하며 망할 날만 기다리는 지경에 이르자, 송사는 1896년 정월 모든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키기로 통보하고, 장성·광주·나주 등으로 의병을 이끌고 옮겨 다니면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국왕의 해산 명령에 불복할 수 없어 의병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송사의 호남 의병으로 궐기한 일은 한말 의병 운동의 효시로서 성재 기삼연, 녹천 고광순 등을 비롯한 의병대장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송사 자신이 저작한 ‘호남의사열전’(湖南義士列傳)에 나오는 김용구(金容球)·김봉규(金奉奎)·박경래(朴慶來)·김준(金準)·전수용(全垂鏞)·김영엽(金永曄)·김익중(金翼中) 등의 모든 의병장들에게 영향을 미쳐, 호남 의병 운동이 조선의 마지막 민족혼을 발산할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사실이다. 의병하면 호남 의병이었으니, 송사는 바로 호남 의병의 발단을 제공한 학자 의병장이었음을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송사는 학자로서의 그 명성이 더 높다. 문인록에 기록된 제자는 무려 1238명이니 그들이 모두 일제에 항거한 척사위정파들이었다. 조선의 혼을 지킨 뿌리가 노사-송사로 이어지는 호남의 위정척사 정신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