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물 화재나 산불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 흔히 거론되는 ‘불문마’(不問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라는 뜻인데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에 나오는 구절(‘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에서 연유한다. 이 문장은 ‘마구간에 불이 났다.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다쳤느냐만 물으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로 해석된다.

조선 시대만 해도 말 한 마리 값이 노비 두 명 정도에 해당한 점에 비춰 보면, 마구간에 불이 나 값비싼 말이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말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사람의 안위만 살폈다는 점에서 공자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인용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인명을 중시했던 왕들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중 대표적인 내용이 정종의 일화이다.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2월 22일의 두 번째 기사에는 ‘수창궁(壽昌宮)이 화재를 당하였다. 실화(失火)하여 침실에서 시작해서 대전(大殿)에까지 불길이 미치었는데, 대신 모두가 불을 끄려 달려들었다. 이때에 사고(史庫)가 수창궁 안에 있었는데, 입직하던 사관(史官) 노이(盧異)가 사고를 열고 손수 사책(史冊)을 꺼내었다.

이에 임금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궁궐은 이미 불타서 구제할 수가 없으니, 사람이나 상하지 말게 하라”라고 기록돼 있다. 수창궁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후 즉위식을 가진 곳이자 정종이 머물며 정사를 보던 의미 있는 궁궐인 만큼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고, 불을 낸 이에 대한 처벌을 내릴 만했지만 정종은 사람이 상하지 않기만을 바랐다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인 최근의 강원도 산불에 대한 대처는 단호하고도 신속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야간이나 강풍이 불 때도 운항이 가능한 소방 헬기 도입 등 소방관들이 좀 더 안전하게 불을 진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