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세계 미술관 기행 <4> 영국박물관
‘전리품 수장고’라 하지마오, 인류 역사·문화의 寶庫라오
1753년 박물학자 슬론 경 7만여점 정부에 맡겨
1759년 조지왕 2세 세계 첫 국립박물관 개관
로제타석·람세스 2세 흉상 등 800만점 무료 전시
이집트·고대 그리스·아시아로 구분…3층엔 한국관
2019년 04월 11일(목) 00:00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정원’.

대영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은 세계 최초의 국립박물관이자 800만점이 넘는 컬렉션을 보유한 글로벌 미술관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가져 온 전리품의 수장고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고 있다. 약탈문화재에 대한 세계인의 문제의식을 일깨운 엘긴 마블 반환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세계를 위한 세계의 박물관’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영국박물관의 정문으로 들어서자 길게 늘어선 관람객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박물관 정원 한켠에 설치된 간이 검색대에서 소지품을 검사받기 위해서다. 흔히 로비에서 소지품을 검색하는 여타 유명 미술관과 달리 아예 미술관 건물 밖에서 검색하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그리스양식의 고풍스런 건물과 달리 미술관 로비는 자연광을 끌어 들인 격자모양의 거대한 유리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2000년 밀레니엄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정원’(Queen Elizabeth Ⅱ Great Court)이다. 방문객들은 유리지붕으로 흘러 들어오는 빛 아래 앉아 박물관에 대한 정보도 얻고, 아트숍에서 기념품을 고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문득, 박물관이 아니라 도시의 광장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영국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람세스 2세의 흉상’


대정원을 설계한 주인공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 단순함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기술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그의 건축은 인간과 자연, 예술과 건축기술을 조화시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박물관은 왕립의사이자 동식물학자, 미술컬렉터인 한스 슬론(Hans Sloan·1660∼1753)경의 컬렉션과 유언이 모태가 됐다. 생전 그는 동전과 메달 2만3000점, 책과 필사본 등 5만점, 고대 의상 1125점, 방대한 양의 식물표본집 등 7만1000여 점을 모았다. 슬론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들 수집품이 온전히 보존되기를 희망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는 당시 조지왕 2세에게 컬렉션을 기증하는 대신 자신의 가족들에게 2만파운드를 보상금으로 지급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유물을 해외에 매각할 뜻도 내비쳤다. 조지왕 2세와 의회는 긴 논의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컬렉션을 전시할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영국박물관이 대중에게 문을 연 건 1759년 1월 15일. 조지왕 2세는 박물관 개관을 위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재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블룸스버리 17세기풍의 몬태규 하우스(Montagu House)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박물관은 개관과 동시에 영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교회나 왕실에 속해 있던 대부분의 박물관이 귀족적인 회화 중심의 컬렉션을 소장한 것과 달리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유물과 예술품을 무료로 전시했기 때문이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기증받은 컬렉션을 대중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는 오늘날까지 무료개방이라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슬론경의 자연사유물과 도서 등이 주를 이뤘던 영국박물관 컬렉션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건 1772년. 당시 나폴리의 영국 대사였던 윌리엄 해밀턴의 그리스·로마 컬렉션, 영국 내전을 기록한 토머슨 컬렉션, 1000여점의 희곡원고로 이뤄진 개릭 장서컬렉션,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토머스 쿡의 수집품들이 추가되면서 영국박물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말하자면 인류학적 유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박물관’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집트 고대 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로제타석’.


특히 19세기 초 박물관 컬렉션의 한 획을 긋는 세기의 작품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영국군이 나일강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한 후 고대 이집트의 조각작품이 대거 유입됐는 가 하면 이집트의 영국 영사로 근무한 헨리 솔트가 보유하던 람세스 2세의 거대 흉상, 찰스 타운리(Townley)의 그리스 조각 컬렉션(1805년), 토머스 브루스의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1816년), 로제타석(Roseta Stone·1802년) 등이 차례로 수장고에 들어왔다.

영국박물관의 800만 점에 달하는 컬렉션은 그 자체가 거대한 인류 서사시다. 내부 전시품은 크게 이집트, 고대 그리스,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 중앙홀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집트 전시실이 나오고, 입구 중앙에 그 유명한 로제타석이 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에 한 병사가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마을에서 발견한 것이다. 기원전 196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칙령을 담고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람세스 2세의 흉상도 반드시 관람해야 할 코스다. 프랑스 군인들이 옮겨가려고 오른쪽 어깨에 구멍을 뚫었지만 못 가져가고 1816년 대영제국 시대 영국으로 옮겨왔다. 고대근동관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의 궁전 성문 입구를 지키던 수호동물 ‘라마수’ 석상이 중요하다. 인간의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달고 황소의 몸을 가진 라마수는 앞에서 보면 정지된 모습이지만 옆면은 걷고 있다.

이집트 고대 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로제타석’.
또한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3편에 등장한 모아이석상 ‘호아 하카나나이아’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박물관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밑도 끝도 없이 ‘껌을 달라(give me gum-gum)’고 외치는 기괴한 돌덩이로 묘사된 게 바로 모아이 석상이다. 6~15세기경 현무암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모아이 석상은 1868년 영국이 남태평양 칠레령 이스터섬에서 약탈한 유물이다.

이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유물은 19세기 이후부터 전시된 게 대부분이다. 전시품을 늘려가던 20세기 초 영국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공립미술관 답게 관람객의 작품 이해를 돕는 가이드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교육과 출판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박물관 북측 건물 3층 67호의 한국관은 둘러봐야 할 전시실이다. 국제교류재단이 주관해 전통 한옥과 도자기, 서화 등을 전시중이다. 한국관광객들 외에는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가끔 사천왕을 그린 탱화를 베껴 그리는 벽안의 미술 학도들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한 컬렉션의 힘일까. 개관 초기 한 해 평균 관람객이 5000명 이었던 영국박물관은 근래 600만 명이 다녀가는 ‘명품박물관’으로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런던=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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