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남향집’이 있어야 할 곳은
2019년 04월 10일(수) 00:00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5년 전 국립현대미술관(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던 날, 따스한 햇살과 늙은 대추나무가 인상적인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고 오지호(1905~1982)화백의 ‘남향집’(1939년 작)이었다.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명화를 만나다-근현대회화 100선’에는 ‘남향집’ 이외에 ‘처의 상’(1936년작), ‘설경’(1971년 작) 등 오 화백의 대표작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남향집’은 유독 오 화백이 아꼈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른 겨울 따뜻한 어느 날 오후, 남향 초가집의 흰 벽과 그 앞에 있는 늙은 대추나무 가지의 음양의 교차를 그렸다”. 생전 그의 설명대로 맑은 공기와 투명한 빛이 들이치듯 쏟아지는 화폭에선 따스한 남도의 정서가 묻어났다.

하지만 ‘남향집’앞에 선 나는 명작을 봤을 때의 벅찬 감동과는 별개로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남향집’이 현대미술관의 품에 안길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다.

사실 현대미술관에는 ‘남향집’을 비롯한 오 화백의 작품 37점이 때 아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지난 1985년 오 화백의 유족들이 이들 작품을 전남도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변변한 미술관이 없어 서울로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증 당시 현대미술관은 유족들에게 상설전시관 건립을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대다수 작품은 지하 수장고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미술관 시설이 부족해 그의 작품들을 별도로 전시할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7년 광주일보를 통해 이런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오지호 유작 돌려받자’라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하지만 국가재산인 만큼 광주에 돌려줄 수 없다며 미술관측이 외면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끝났다. 설상가상으로 광주시와 시립미술관의 무관심도 한몫했다는 게 당시 미술계의 중론이었다.

최근 ‘남향집’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현대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남도미술_뿌리 Roots’(6월8일까지 전시)전인데, 한국 화단의 큰 맥을 형성한 남도작가들의 명작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이상실 여사(오지호 화백의 며느리)는 “마치 돌아가신 아버님을 다시 뵙는 것 처럼 반갑고 기쁘다”면서 “생전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 ‘남향집의 타향살이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오 화백의 작품들을 되돌려 받는 건 남도 미술은 물론 한국미술의 뿌리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식처 대신 ‘낯선 곳’에서 떠돌고 있는 유작들의 설움을 이젠 끝내야 될 때다. 만약 반환이 어렵다면 영구임대 등을 통해 광주로 가져오는 지혜를 모으자. 이는 곧 거장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남향집’이 있어야 할 곳은 그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여기, 남도이기에.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