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카페인, 담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중독성 약물’이다. 물론 이 세 약물은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게 수용됐다.

그 가운데 알코올은 즐거움을 위한 공간, 다시 말해 유흥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중독성 약물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다. 마약과 함께 술은 일탈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자다. 물론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유흥과 관련된 공간에서의 술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술이 유흥을 위한 공간 탄생에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평가다. 또한 ‘새로운 것들’과 결합해 새로운 문화가 발현되는 토대가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714년 로버트 월폴을 시작으로 1762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거의 모두 배출해낸 곳이 있는데 다름 아닌 와인바 ‘키트캣클럽’이다. 이곳은 윌리엄 콩그리브, 존 밴브루, 매투 프라이어, 조지 스테프니 같은 작가들도 몸담았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주공간이 정치인, 예술가, 지식인들의 교류 공간으로 확장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술과 술집, 즉 음주와 음주공간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룬다.

다양한 공간에 얽힌 술에 관한 이색적인 문화사를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주류 역사 연구자이자 제조 전문가인 루스 볼이 펴낸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는 술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다. 저자는 500여 년간 유럽, 그 가운데서도 영국의 음료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당대의 공간과 연계해 들여다본다. ‘저급한’과 ‘상류’의 상충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지만 일정 부분 음주를 매개로 문화예술이 꽃피웠던 사례를 보면 긍정적인 관점을 취한다.

대표적인 공간은 여관, 와인바, 선술집, 커피하우스, 한잔집, 티하우스다. 저자는 중세가 끝나갈 무렵 여행자들이 늘어난 탓에 영국 곳곳에 자리 잡은 여관 이야기부터 꺼낸다. 원래 가난한 여행자들이 유숙하며 음주를 할 수 있는 곳이 여관이었다.

그러나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각 지역 여관 주인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우체국장’ 역할까지 했다. 여관에서 술을 마시며 거래를 하는 관행이 상업 활성화에 기여를 했으며, 여관 손님들은 더없이 좋은 거래 증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 와인바 클럽은 유명 회원들을 거느리며 존재해왔다. 일례로 1830년에 창립된 ‘애서니엄클럽’은 ‘학문, 문학, 예술 분야의 저명인사’를 회원 자격으로 뒀는데 연극 관련 공간까지 두고 있을 만큼 전문적이었다. 그들이 뒷방에서 담화나 나누고 있었다면 오랜 세월 존립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저자는 서민들의 선술집도 조명한다.

이전의 와인바는 유명 정치인, 예술가들의 회합 장소였지만 더 이상 부자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었다. 저자는 “맥주의 질이 좋아진 덕분에 부자들 중 일부가 사교계에서 유행하는 술로 맥주를 받아들이게 됐다”며 “50년 전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선술집은 여러 기술자들의 노동조합과 직업소개소 역할까지 감당했다. 한마디로 서민 공동체의 주춧돌로 자리잡았다는 말이다.

“18세기 중반 무렵에는 선술집 지배인이 훨씬 더 전문적이고 존경할 만한 직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부유한 여관 지배인의 사회적 지위와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자는 술 외에도 커피하우스 이야기도 언급한다. 오스만제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 맛에 빠진 상인 중 일부가 커피를 들여오면서, 새로운 사교 장으로 커피하우스가 부상한다. 특히 공화주의자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평판을 얻었고 이후 업계의 중요 정보가 공유되면서 증권거래소 설립의 기폭제가 됐다.

이밖에 저자는 하층민과 노동자를 위한 ‘한잔집’ 같은 술집,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찻집’도 들여다본다.

책에는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된 150여 장의 일러스트가 수록돼 있어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음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술문화는 동서양을 넘어 대동소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루아크·2만1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학박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