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못한 삶, 삶 못지 않은 죽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존엄 그 자체는 전제하더라도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80년 5월 광주는 죽음이 도사리는 공간이었다. 혹자는 당시 “열흘의 공동체”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앞으로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미래 공동체”였다고 본다.

담양 출신 김민라 작가가 삶과 죽음 사이의 얼개를 탐색하는 소설집 ‘고슴도치의 방’(문학들)을 출간했다. 2009년 지역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가, 10년 만에 펴낸 첫 작품집이다. 소설집이 주는 무게가 가볍지 않은 것은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첫 창작집이라는 상징과 맞물려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각각의 작품에는 광주 5월의 죽음, 일상에서 죽음이 임박한 인물의 상황 등 각기 상이한 사유의 작품들이 담겨 있다.

“치과 치료를 받느라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일상”이라는 말에서 김 작가의 근황이 짐작됐다. 글을 쓰는 과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앓던 이를 뽑아내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작품이 주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말에 “아마도 죽음을 다룬 소설이 많아서 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죽음은 절망으로만 치닫는 극한의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았다. 80년 광주의 공간, 공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미증유의 공동체를 일궈 낸 것은 역설적으로 ‘삶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표제작 ‘고슴도치의 방’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G에서 자취를 하는 막내 외삼촌에게 반찬을 전해주러 갔다가 화를 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러나 그때 부상으로 아버지는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문학들 제공>

“어머니는 아버지가 혼자 있을 때 외롭지 말라며 고슴도치를 사다준다. 화자의 눈에 아버지는 세상의 폭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골방에 갇혀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에 다름아니다.

저자는 죽음보다 못한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마흔 줄의 미망’이 대표 작품이다. “주유소에서 일어난 절도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거든요. 아이 셋을 키우며 나이 마흔에 논술자격증을 따 강사라도 하려는 여성의 이야기죠. 그런데 누구도 그러한 삶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작품 ‘카르페 디엠’은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는 윤미와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준영의 사랑이야기다. 작가는 “이 둘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에게 죽음은 곁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문학의 길로 들어섰을까. “어린 시절은 현재 모습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대개 그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노는 것을 좋아하듯 김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소설 제목은 곧잘 잊어버리는데 스토리는 선명하게 기억하거든요.”

김 작가는 소설은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고 했다. “어떤 때는 알 것 같다가도 조금만 방심하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버려 백지상태가 된다”며 그 때의 허탈감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소설을 공부했다. 문단의 원로인 문순태, 한승원 작가와 이승우, 채희윤 작가 등으로부터 소설이 무엇이며, 어떤 관점으로 소설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배웠다.

“내 삶에 있어 문학은 등대나 마찬가지였죠. 고통스럽거나 방황할 때 오래 헤매지 않게 길을 안내해주었으니까요.”

한편 김 작가는 조선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동신대 대학원 한국어교원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신대와 조선대에 출강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