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음악가 정율성(1914-1976)의 오페라 ‘망부운’(望夫云)이 57년 만에 복원돼 광주 무대에 오른다.

창단 2주년을 맞은 광주시립오페라단은 첫 브랜드 작품으로 오는 29~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망부운’을 선보인다. 작품을 완성한 두 주역인 정갑균(57)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과 양회석(62)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최근 만났다.

‘망부운’의 배경은 중국 운남성 대리백족자치주로, 공주와 사냥꾼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 소수민족 ‘백족’(白族)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남조국의 공주는 계모인 왕후로부터 정략결혼을 강요받는다. 공주의 사위를 뽑는 부마 선발 대회에서 공주는 정직하고 용감한 사냥꾼 아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주와 아백의 사랑을 방해하는 왕후와 법사의 음모는 끊이지 않지만 이들은 잔혹한 운명에 맞서 사랑을 이루려 한다.

수 차례 논문과 책을 펴내며 ‘망부운’ 연구를 집대성한 양 교수는 중국어로 초연된 작품의 번역을 맡았다.

광주시는 시립오페라단 창립을 준비하던 3년 전부터 정율성 오페라 복원을 추진해왔다.

주연을 맡은 소프라노 박수연·테너 고규남.

“초대 오페라단 예술감독을 맡은 정 감독은 오페라 ‘망부운’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1962년 중국 베이징에서 초연된 작품을 복원하는데 매달렸다. 국내 중국 문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양회석 교수는 작품의 번역을 맡은 동시에 학술적인 연구를 이어왔다.

‘왜 이 시점에 정율성이냐’는 물음에 정 감독은 정율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세계에 주목했다고 답했다.

“정율성은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의 음악성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가 서양식 오페라를 만든 1960년대 초반에는 한국·중국에서 오페라가 흔하지 않은 공연예술이었어요. ‘망부운’이 초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대혁명’이 발발해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이 작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망부운’ 복원은 지난 2017년 정율성의 딸 정소제씨로부터 악보를 건네받으면서 다시 급물살을 탔다. 양 교수는 악보를 건네 받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2017년 1월23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20년 넘게 정율성에 관심을 갖고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녔지만 그때만큼 의미 있는 성과는 없을 거예요.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정율성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 ‘망부운’을 통해 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든요.”

그토록 찾아 다녔던 악보를 손에 넣었지만 이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정 감독은 자신의 집무실 문서고에 소중히 보관해온 악보를 보여줬다. 악보는 곳곳이 훼손돼 있었고 아예 일부는 통째로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온전히 남아있지 않은 악보로 57년 전 오페라 작품을 복원하는 건 창작보다 3배 더 어려웠어요. 망부운을 다시 무대에 올리려는 광주 시민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1년 여의 작업을 거쳐 원래 5막 4장이었던 작품을 4막 2장으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공연은 양일 한국어·중국어 공연으로 나뉘어 열린다. 29일 오후 7시 30분에는 광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박수연과 테너 고규남이 각각 공주와 아백 역을 맡고, 30일 오후 3시에는 중국 중앙가극원 솔리스트인 소프라노 차이난과 러시아 림스키-코르사코프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쉐하오인이 주연으로 출연한다.

김덕기 전 서울대 교수가 지휘봉을 잡고, 광주시립교향악단·시립합창단·광주뿌리한국무용단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망부운’은 정율성의 가장 권위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광주 출신 음악가의 위상을 높이는데 이번 공연이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망부운’은 오는 10월24일 주상하이 한국문화원과 같은 달 하얼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면서 더 큰 무대를 만날 예정입니다.”

R석 3만원·S석 2만원·A석 1만원. 예매 1588-7890(티켓링크).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