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당시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들은 ‘진압 전에 술을 마셨음이 분명하다’는 말도 나돌았다. 근거 없는 악성 유언비어였는데 이는 과연 누가 만들고 퍼뜨렸을까. 누군가 이를 만들었다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이 다 되어서야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엊그제 내놓은 ‘5·18 편의대 정밀 투시’라는 제목의 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자료는 신군부의 공작 작전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전두환(88·옛 보안사령관)이 5·18 당시 ‘편의대’(특수 공작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며 유혈 진압의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공작 요원들은 시민군 속에 잠입해 과격 시위 선동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일부 극우 세력이 북한군 투입으로 오해했을 수 있는 대목이다.

편의대란 중국에 실존했던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의 줄임말이다. 부대원들이 사복 차림으로 적지(敵地)에 침투해 첩보 수집과 선동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지칭한다. 80년 당시 편의대에는 505보안부대, 공수여단, 정보사령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31사단, 중앙정보부, 경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시 유언비어는 시민들을 자극하기 위한 편의대의 계략이었다는 것이 기록관의 판단이다. 1979년 부마항쟁 때도 ‘전라도 군인이 와서 경상도 사람 다 죽인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게다가 5·18 직후 보안 요원들은 시청에 들러 자신들이 퍼뜨린 유언비어가 제대로 유통됐는지 확인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5·18 당시 전남도청 상황실에 잠입한 편의대 대원이 시민군 행세를 하다 수상히 여긴 시민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5·18기록관은 5·18 당시 전두환으로부터 ‘사태감독관’이라는 밀명을 받은 광주 출신 홍성률 대령이 편의대를 지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출범하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는 광주에 머무르면서 온갖 공작을 추진했던 홍 대령의 행적을 낱낱이 추적하는 한편 편의대의 실체를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