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세계 미술관 기행 <2>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불꽃같이 살다간 천재 화가…꺼지지 않는 예술의 불꽃
고흐 미술관, 렘브란트 미술관 등 세계적 미술관과 뮤지엄 광장에 ‘둥지’
유화 200점·동생과 주고 받은 편지 700통·자화상 18점 등 최다 컬렉션
시기별 예술·삶 구성…시간대별 입장객 수 제한·매년 200만명 다녀가
2019년 03월 14일(목) 00:00

반 고흐 미술관은 고흐의 자화상 18점, 유화 200점, 편지 700통 등 독보적인 컬렉션을 자랑한다. <사진 제공=반 고흐 미술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미술애호가들에겐 로망이다.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을 필두로 반 고흐 미술관, 시립미술관, 렘브란트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들을 둘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덜란드 정부는 아예 이들 미술관을 근거리에 배치한 미술관 벨트, 일명 뮤지엄 광장(museumplein)을 조성해 글로벌 관광명소로 키우고 있다.

뮤지엄 광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치 우주인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조각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암스테르담의 상징인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 조형물과 반 고흐 미술관, 시립미술관 사이에 자리한 남아공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조세프 클리반스키(Joseph Klibansky)의 ‘몽상가의 자화상’(Self Portrait of a Dreamer)이다. 13m에 달하는 대형 조형물은 지난 2018년 6월26일부터 8월27일까지 뮤지엄 광장 연못 에서 열린 ‘ArtZuid’전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반 고흐 미술관 전경.
‘몽상가의 자화상’을 지나면 모던한 디자인의 반 고흐 미술관이 자태를 드러낸다. 1973년 문을 연 고흐미술관은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d)가 디자인한 본관 빌딩과 일본인 건축가 쿠로카와(Kisho Kurokawa)가 설계해 1999년에 개관한 부속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천재화가 고흐의 예술세계와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단일 미술관으로는 반 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정문에 다다르자 수많은 관광객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오전 개관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인데도 미술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유를 물어 보니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미술관에 들어가면 쾌적한 감상이 어려워 일정 시간대 별로 관람객을 입장시키기 위해서란다. 매년 200만 명이 넘는 글로벌미술관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 한다.

유독 반 고흐 미술관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컬렉션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해바라기’, ‘노란 집’, ‘아를의 침실’, ‘자화상’ 등 유화 200여 점과 드로잉 500여 점,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700통의 편지, 고흐 개인의 유품 등이 소장돼 있다. 뉴욕의 근현대미술관이나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세계의 여러 미술관들이 고흐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컬렉션의 규모 면에서는 단연 ‘톱’이다.

고흐는 해바라기와 자화상을 화폭에 즐겨 다룬 화가였다. 그가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 가운데 18점이 고흐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미술관은 반 고흐의 예술과 삶을 시기별로 구성, 작품과 이에 얽힌 스토리 등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1890년 작)
초기 작품인 ‘바느질하는 시엔과 딸’, 고흐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감자 먹는 사람들’과 ‘구두’, 고갱과 함께 아를(Arles)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창작활동을 시도했던 ‘노란 집’, 고흐의 예술적 상징이 된 ‘해바라기’ 등은 놓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전 세계인들이 고흐를 좋아하는 데에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도 빼놓을 수 없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창작열을 불태웠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발작으로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결국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한 불운의 화가였기 때문이다. 1853년 3월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화방과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27세 무렵 화가의 삶을 꿈꾼다. 지금으로 보면 꽤 늦은 나이에 예술가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제대로 된 정규교육은 물론 스승도 없었던 그는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고흐가 화가가 될 결심을 한 데에는 동생 테오(Theo)의 영향이 컸다. 생전 2000여 점의 작품을 그렸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단 1점도 팔지 못했던 고흐를 동생 테오는 물심양면으로 작품 활동을 지원한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고흐와 테오는 평생 7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 등 남다른 우애를 나눴다. 1886년 동생 테오가 거주하던 파리로 이주해 작업을 했던 고흐는 얼마 후 파리생활에 염증을 느껴 1888년 프로방스의 아를로 거처를 옮긴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이 ‘해바라기’, ‘아를의 붉은 포도밭’, ‘별이 빛나는 밤’ 등이다.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1890년 작)
세상을 떠나기 전 70일간 머물렀던 파리 외곽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도 그는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들 가운데 일본 판화(우키요예)의 영향을 받은 ‘아몬드 나무’는 고독하고 불행했던 현실과 달리 평온하고 깨끗한 파란색 하늘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고흐 미술관에서는 18점의 ‘자화상’을 통해 고흐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약간 벗겨진 머리에 강렬한 눈매, 매부리코, 거칠게 보이는 붉은 수염, 모자를 쓰거나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 굴곡과 어려움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1885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감자 먹는 사람들’의 스케치와 함께 보낸 편지.
특히 테오와 나눈 수백여 통의 편지는 그의 남다른 글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에 대한 간절한 열망, 동생에 대한 각별한 마음, 자신이 처한 역경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들과 맞서려고 했던 의지 등등..

동생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분.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다면 단 한명이라도 언젠가 내 그림을 바라봐주고, 이해해주지 않을까. 가끔은 그런 날을 꿈꾼다. 카페에서 나와 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떤 날을 생각하기도 한단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와 치열한 작가 정신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다. 고흐의 바람대로 오늘도 누군가 그의 그림 앞에 서서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뮤지엄 광장의 명물로 떠오른 ‘몽상가의 자화상’.
암스테르담=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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