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꽃길을 걷다’
2019년 03월 13일(수) 00:00
요즘 제주도는 때아닌 유채(油彩) 관광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봄의 전령사인 유채(油菜)꽃을 찾는 상춘객 못지 않게 색다른 미술체험을 만끽하려는 이들 때문이다.

진원지는 다름아닌 미디어아트 전시 ‘빛의 벙커: 클림트’. 지난해 11월 16일부터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옛 통신벙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지난 10일 2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빛의 벙커’는 명화, 미디어 아트, 음악의 조화가 빚어낸 예술의 향연이다. 프랑스 회사 컬처스페이스가 개발한 미디어아트 기술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훈데르트바서의 그림을 음악과 함께 영상화한 뒤 전시장 삼면(三面)에 투사하는 입체 전시다. 100여 대의 프로젝터가 쏜 빛이 넓이 3000㎡, 높이 6m 규모 벙커의 암흑을 한순간 판타지 세계로 바꿔 놓는다.

높다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로 100m, 세로 50m의 직사각형으로 구획된 어둠이 펼쳐진다. 이윽고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서곡이 묵직하게 흘러나온다. 그러자 사방의 벽과 바닥이 고풍스러운 벽화와 장식으로 들어차기 시작한다.

뭐니뭐니해도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클림트의 ‘황금 시기’ 작품들이다. ‘키스’ ‘유디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등 클림트의 대표작들이 차례 차례 주변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인다. 고화질 빔 프로젝터 90대가 사방 벽에 빛을 쏘고 70여대의 스피커는 말러,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전시장 곳곳에 퍼뜨린다.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대목은 바로 이때부터다. 노랗게 반짝이는 전시장 바닥 위를 느릿느릿 걷다 보면 마치 꿈길을 걷듯 황홀하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 미디어 338(빛고을아트스페이스 2층)을 찾은 관람객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창의도시 사업단이 기획한 ‘꽃길을 걷다-김창겸’전 개막식에서 환상적인 꽃과 나비의 향연에 빠진 것이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전자바이올리니스트 강명진씨의 비발디의 사계 ‘봄’ 연주와 함께 화려한 ‘꽃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미디어아트를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마치 미디어 캔버스속의 여인처럼 아름다운 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꽃밭을 산책을 하는 듯 했다. 실재와 가상의 조화가 빚어낸 미디어아트의 매력을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광주는 지난 2014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다. 미디어 338과 홀로그램극장, 내년 완공예정인 AMT(Art and Media Technology)센터 등이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를 상징하는 핵심사업들이다. 하지만 미디어아트창의도시가 빛을 발하려면 시민들이 내 공간, 내가 즐기는 전시라는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빛의 벙커’(오는 10월27일까지)와 ‘꽃길을 걷다’(3월7~4월9일)처럼 시민들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

나들이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잠시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전시장으로 꽃구경을 떠나자. 더불어 올해는 ‘꽃길만 걷는’ 행복한 나날이 되길….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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