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팔순이 넘은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묻는 거예요. 네 시집은 언제 나오느냐고. 눈 밝을 때 읽어보고 싶다는 말에 가슴 한켠이 찡했습니다.”

지난 2016년 문학들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김애숙(57)시인이 3년 만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많이 부족하다”며 부끄럽게 건넨 작품집은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벽 타는 남자’. 첫눈에도 작품집의 제목은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대개 첫 작품집을 펴낸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평안함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김애숙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품의 빛깔이나 분위기가 시인의 이미지와 닮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았다. 작품과 시인의 이미지는 ‘신토불이’(身土不二)와 깥은 관계인지 몰랐다.

“어려서 모난 성격 탓에 친구들이 별로 없었어요. 어머니는 그런 저가 안쓰러웠던지 동화책을 사주거나 빌려다 주셨죠. 혼자 책을 보며 노는데 익숙했던 거죠.”

그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삼십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혼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신문사 신춘문예에 떨어져 울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후 광주 일곡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문학창작교실에 등록해 고재종 시인의 강의를 들었다.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알을 깨고 나오는 계기가 됐다. 물론 창작 공부를 한다고 해서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15년이 넘는 시간을 창작에 쏟은 것 같아요. 끝없는 좌절과 허무, 방황 속에서 미련하리만큼 고집스럽게 버텼죠. 그 시절을 넘다보니 어느 날 문득 등단이라는 문이 열렸습니다.”

이번 작품집에는 삶에 대한 성찰, 여성성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담겨 있다. 고진하 시인의 표현대로 “존재의 심층까지 들여다보는 시인의 시선”은 깊고 따스하다.

“등골에 맺히는/ 페인트 냄새를 삼키며/ 벽을 탄다는 건, 스스로 살아온 날들을 펼쳐/ 우주에 몸을 맡기며 현실 너머의 그 세계를/ 꿈꾸듯 색을 칠하는 일// 햇빛과 바람은 허공에 지문을 찍고/ 남자는 이 벽 저 벽을 옮겨 다니며 색을 칠한다…”(‘벽 타는 남자’ 중에서)

표제시 ‘벽 타는 남자’가 주는 울림이 간단치 않은 것은 화자의 눈에 비친 남자의 모습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해 거미가 한 줄의 실을 뽑아내듯이 허공에 매달려 붓질을 하는 장면’은 엄숙하면서도 아슬아슬하다. 우리의 삶이 바로 그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화자의 예리한 눈이 직시한다. 힘겨운 일상을 사는 많은 이들의 모습이 “뼈아픈 성찰을 화두로 삼은 수도승” 같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번 시집에서는 ‘명암 한 장’, ‘어떤 기록’, ‘비석’ 등의 작품이 눈에 띈다. “세상과 타협한 수백 번의 한숨이 소인처럼 찍힌”, “기록 앞에선 그저 침묵해야 한다” 등과 같은 표현은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시는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것’이라는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빌려 물었다.

“시란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닐까 싶어요. 어찌 보면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구요.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와 색깔로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