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대자동차에서 정년 퇴임하고 시골에서 한옥 짓고 산다는 추창근(66)씨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그를 만나러 영암에 갈 때만 해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9일 추씨가 사는 영암군 군서면 월암마을에 들어선 순간 ‘이렇게 노후를 보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은 추창근·조힐아(64)씨 부부가 6년째 황혼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보금자리다. 약 400평(1322㎡) 땅에 들어선 한옥집 앞마당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제철 과일·채소를 가꾸는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추씨는 광주에 있는 현대차 지점에서 30년 동안 일했다. 회사로부터 ‘30년 근속 메달’을 받은 그는 정년을 맞은 환갑 때 20년 넘게 살아온 진월동 아파트를 뒤로 하고 영암 월암마을로 향했다. 지난 1995년에는 ‘현대차 선임들 모임’이라는 뜻을 지닌 ‘현대차 광주·전남 현수회’를 만들 정도로 그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 동안 말 그대로 ‘몸 바쳐’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귀농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고해성사하듯 설명했다.

집 앞마당 텃밭을 가꾸고 있는 추창근씨 부부.

“귀농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을 잊을 수 있도록 아예 다리를 끊어버리는 것과 돌아갈 여지를 남기는 겁니다. 대기업에서 월급 받고 사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따닥따닥 붙어 사는 아파트 생활은 허전함만 키웠어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자는 다짐을 하며 고향인 해남을 제치고 연고 없는 영암에 터를 잡았습니다.”

10여가구가 옹기종기 들어선 한옥마을은 추씨와 역사를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6년 전 영암 한옥단지 추진위원장을 맡아 마을의 도로, 하수구, 조경 등 기반시설을 닦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추씨는 4년 전부터 2000평(6611㎡) 규모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에는 ‘농사를 접어야 하나’ 할 정도로 큰 시행착오를 겪었다. 군은 귀농인을 영입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막상 귀농한 뒤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논에 물대는 것부터 수확까지 모든 절차에서 실수를 겪었던 추씨는 원주민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눠가며 농사법을 터득했다.

추씨의 농사일은 아직까지 큰 소득을 보지는 못했다. 추씨 부부는 매달 수령하는 국민연금 139만원과 직장에 다닐 적 들이부은 개인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적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대기업의 특성상 퇴직금은 노후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시골에 집 짓고 웬만한 농사를 지으려면 3억원 정도의 자금은 각오를 해야해요. 광주의 아파트를 판 대금과 수십년 동안 들어놓은 적금, 지자체에서 지원한 3000만원으로 겨우 살림을 꾸릴 수 있었어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1남4녀 중 장남으로서 열심히 달려온 그는 귀농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 추씨 부부는 주말이면 인근 월출산 올레길을 등반하고 군에서 진행하는 도예·수영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추씨는 시집을 내보겠다는 작은 소망을 갖고 오랜 바람이었던 시작(詩作)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은퇴를 인생의 종착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진짜 꿈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여겨야 하죠.”

/글·사진=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