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Yolo),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Work + Life Balance)…. 근래 우리의 삶을 대표하는 트렌드 키워드이다. 특히 삶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시대에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워라밸시대의 여행은 과거와 다르다. 짧은 기간내 유명 관광지를 ‘찍는’ 관광 보다는 도시의 미적감각을 즐기는 아트투어가 각광받는다. 근래 문화관광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예향의 소문난 미술관들을 둘러 본다.



지난달 초, 담빛예술창고의 문예카페에 들어서자 10여 개의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방문객들은 카페의 한켠에 서서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테이블을 떠나는 사람은커녕 시간이 지날 수록 방문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20분쯤 지났을까? 카페의 맨 앞쪽에 설치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에서 낮고 묵직한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파이프 오르간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는 30분 동안 귀에 익숙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시작으로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 파헬벨의 ‘캐논변주곡’과 팝송 ‘A Love until the end of the time’등을 연주했다. 공연이 끝나자 그제서야 일부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다른 이들은 빈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오후의 여유를 즐겼다. 매주 토요일과 공휴일(오후 4시30분~5시), 화요일·목요일(오후 2시~2시30분) 담빛예술창고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 콘서트다.

근래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문화명소는 다름 아닌 미술관이다. 죽녹원, 관방제림, 소쇄원, 면앙정, 송강정, 메타세콰이어, 대나무 박물관 등 담양의 역사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전통적인 관광지 못지 않게 자연과 예술을 접목한 미술관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옛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담빛예술창고, 힐링 미술관으로 자리잡은 대담아트센터,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을 묶은 남촌미술관, 공예전문 보임쉔 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대담아트센터.

#담빛예술창고

지난 2015년 가을 개관한 담빛예술창고는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960~70년대 지어진 옛 창고의 높은 층고를 그대로 살린 미술관은 인근의 관방제림과 어우러진 고풍스런 분위기가 멋스럽다. 미술관 앞에 서면 파란지붕과 붉은 벽돌건물에 한자로 새겨진 ‘남송창고’(南松倉庫)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자칫 추억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공간이 예술의 옷으로 갈아 입은 탓인지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한 듯 설렌다.

미술관은 330㎡(약 100평) 규모의 창고 2동이 이웃해 있는 ㄱ자 형태다. 왼쪽 건물은 전시장, 오른쪽 건물은 카페로 리모델링해 공간의 특성을 강조했다. 전시장안으로 들어서면 ‘남도르네상스 인터랙티브 콘텐츠-사유의 정원 소새원을 거닐다’(1월28~3월31일)전이 방문객을 맞는다. 전남정보산업진흥원이 기획한 이 전시는 호남의 대표적 별쇄정원인 소쇄원의 사계절 풍광과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소쇄원 48영(瀟灑園四八詠)’’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높은 층고와 파이프오르간이 인상적인 카페가 기다린다. 건물 외관은 옛 모습 그대로 재현했지만 카페 내부는 모던한 감각으로 꾸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1층 가운데 꾸민 서가는 차를 마시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을 한다. 담양군 담양읍 관방제림 객사7길 75, 개관시간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 설날 당일 휴관. 문의 061-383-8241.

공예전문미술관 ‘보임쉔’.

#대담아트센터

죽녹원과 관방제림 사이에 자리한 대담미술관은 지난 2010년 정희남(서양화가) 광주교대 교수가 사재를 털어 개관한 곳이다. 건물 자체가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미술관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끌어 내 젊은층 뿐 아니라 중장년층들의 문화나들이로 인기가 높다. 미술관 뒤편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감나무 집’도 미술관의 색다른 볼거리다. 옛 집을 허물지 않고 예술작품과 작은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고풍스런 멋과 고즈넉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관 주변을 걷다 보면 지역 작가, 향교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제작한 예술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 담양군 담양읍 언골길 5-4. 연중무휴. 개관시간 오전 9시~밤 11시. 문의 061-381-0082.

공예전문미술관 ‘보임쉔’.

#공예미술관 보임쉔

광주와 담양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보임쉔은 공예전문미술관을 내걸고 지난 2015년 4월 문을 열었다. 독일어로 ‘작은 나무에서 큰 나무로’ 라는 뜻을 지닌 보임쉔은 광주대 인테리어디자인학과 정건용 교수와 목공예를 전공한 부인 김현정 관장이 직접 터를 파는 등 손수 땀을 흘려 가꾼 공간이다.

정 교수가 보임쉔을 열게 된 건 공예작가들을 위한 발표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다른 장르에 비해 공예작가들을 반기는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많지 않다 보니 공예의 매력을 알릴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미술관 옆으로는 작은 감나무를 중심으로 나무데크를 만들고, 그 주변에는 작은 꽃과 나무를 심어 ‘숲속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미술관 옆에 자리한 ‘공예창작소’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시, 창작, 숙식시설을 갖추고 있다. 담양군 대전면 신룡길 79-3. 매주 월요일 휴관.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문의 061-383-6473

담빛예술창고의 파이프오르간 공연 모습.

#남촌미술관

죽향대로 길목에 자리한 남촌미술관은 지난해 4월 이성태씨가 카페와 전시공간을 겸한 공간으로 오픈했다. 30년 동안 회사원으로 일한 그는 주말이면 화구통을 메고 자주 찾았던 담양 남촌마을에 터를 잡고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미술관을 품에 안았다. 건물은 구글에서 3D설계앱을 다운받아 직접 스케치하고 디자인해 시공했다. 본관 건물 1층은 그림이 걸린 갤러리 카페로 100호 짜리 대형 그림 등 다양한 작품이 걸려 있으며 공예가가 만든 가죽제품도 판매한다. 카페 2층은 온전한 전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푸른색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2층 규모의 미술관 별관이 눈길을 끈다. 둥근 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바깥 풍경은 남촌미술관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담양군 담양읍 죽향대로 1290. 매달 둘째·넷째주 화요일 휴관 개관 시간 오전 10시∼밤 10시. 문의 061-381-4320.

/담양=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