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량(仇士良, 781~843)은 광동성 순주 흥녕 출신으로 당 헌종, 목종, 경종, 문종, 무종 5대에 걸쳐 활약한 실세 환관이었다.

순종 때 태자 이순을 보좌했다. 이순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내급사가 되고 평로와 봉상의 군대를 감독했다. 환관 왕수징의 지휘를 받았지만 서로 앙숙이었다. 우신책 영군장군을 거쳐 좌신책군중위에 발탁되었다. 문종은 환관이 황제를 핍박하는 정치적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환관을 제거해 황권이 회복되기를 희망했다. 환관의 신임을 받는 이훈과 정주를 이용해 환관 세력에 타격을 가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835년 이훈은 문종에게 “먼저 환관을 제거한 뒤에 변환을 수복하시고 그런 뒤에 하북 번진을 쓸어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왕수징 세력을 거세하기 위해 헌종을 살해한 환관 진홍지를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왕수징을 좌우신책군용사 겸 십이위동군으로 승진시켰다. 자신감에 취한 왕수징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대비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왕수징은 관저에서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

구사량이 사실상 환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835년 11월 감로의 변이 일어났다. 조회가 시작되자 좌금오대장군 한약이 공손한 자세로 말을 하였다. “후원의 석류나무에 어젯밤 갑자기 감로(甘露)가 내렸습니다. 폐하의 성덕에 하늘이 감동해서 길조를 내려주었으니 조정과 나라에 큰 복이옵니다.” 이훈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며 황제에게 직접 감로를 살펴보자는 청을 올렸다. 황제의 측근인 환관을 한자리에 모으는데 매우 그럴싸한 구실이었다. 황제는 조정 대신들과 환관이 가서 감로를 먼저 살펴보라고 명하였다. 구사량이 후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대기 중이던 한약이 긴장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마침 지나가는 바람이 불어 장막이 흘러내렸다. 장막 뒤에는 무기를 든 병사들이 숨어있었는데 들통이 났다. 궁중 쿠데타를 눈치 챈 구사량이 신속히 문종을 호위해 함원전으로 달아났다. 환관의 지휘를 받는 금군이 출동해 쿠데타는 실패했다. 궁에 갇힌 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명의 사람이 살해되는 복수극이 뒤를 이었다.

구사량은 문종 면전에서 불손한 인사를 하는 등 황제를 황제로 대접하지 않았다. 문종은 집안에서 부리는 종들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한탄만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짐은 가복인 환관을 상대하는 것도 모자라 패하기까지 했으니 정말 못났구나.” 동한 말 이후 사실상 제2의 환관시대가 열렸다. 환관들이 근무하는 북사(北司)가 정치의 주도권을 잡았다. “천하의 모든 일은 북사에 달려 있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840년 32세의 나이로 문종이 태화전에서 붕어했다.

감로지변 이후 맘에 들지 않는 조정 대신을 체포해 살해하는 등 전횡을 휘둘렀다. 우호위대장군과 표기대장군을 역임하고 초국공에 봉해졌다. 좌우 신책군을 모두 통솔해 금군(禁軍)을 장악했다. 문종 사후 태자로 책봉된 조카 진왕 대신 황제의 동생인 영왕을 밀어 결국 승리했다. 태자였던 진왕, 문종의 동생 안왕을 처형하였다. 신임 황제 무종을 꼬드겨 자신의 즉위를 찬성하지 않은 재상 양사복, 이각을 주살하였다. 추밀사 유봉인과 설계릉을 장안 밖으로 내쫓았다. 그러나 재상으로 복귀한 노련한 정치인 이덕유와 무종의 압박 속에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비록 진홍지와 힘을 합쳐 무종을 옹립한 공신이 되었지만 무종은 그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근차근 구사량의 측근 세력을 약화시켰다. 결국 구사량은 나이가 많아 고향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겠다고 퇴직을 신청했다. 얼마 후 집에서 죽었다. 정원진, 어조은, 왕수징처럼 처형되지 않고 집에서 천수를 누렸으니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퇴임하면서 후배 환관들에게 남긴 말에서 그의 장수 비결을 알 수 있다. “너희들의 권세가 줄지 않으려면 황제를 한가로이 내버려두지 말고 가무와 여색으로 황제의 마음을 미혹시켜 쾌락과 사치에 쉬지 않고 빠지도록 해야 한다. 가능하면 책을 멀리 하도록 하고 학자들과 가까이 할 기회를 절대 주지 말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