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철인(哲人)들의 사고(思考)에는 일정한 트렌드가 있는 듯하다. 특히 기존의 신화(神話)를 대체해 우주의 기원과 세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첨단 과학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이 보인다. 5~6년 전만 해도 11차원 우주를 전제로 하는 ‘다중우주’가 과학계의 화두였다면, 지금 과학자들의 관심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새 인류의 탄생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유작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에서 ‘우리는 단순히 유전자 이상의 존재들’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존재 이유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며,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이기적 유전자’, 1993년)라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호킹은 또한 이 책에서 ‘인간은 자체 설계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유전자를 직접 변경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기억 용량, 면역력, 수명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깨뜨린 ‘초인’의 탄생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호킹의 전망이다. 특히 초인이 등장할 경우 가난 등의 이유로 개량되지 못한 인간들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것으로 본다. 이 같은 견해는 최근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초인론-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의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사피엔스 대중의 하위 계층으로 양분된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최근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 내 편집을 가능케 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개발되면서 초인의 등장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리 등의 문제가 있지만 ‘유전적으로 진화된’ 슈퍼휴먼의 탄생은 ‘명분’만 있다면 지구촌 어디선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가 편집된’ 아이가 탄생한 것이 좋은 예다.

지금도 권력가와 자본가는 지구촌 곳곳에서 슈퍼휴먼으로 군림하며 일반 대중과 마찰을 빚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궁극의 초인간이 등장할 미래 세계의 권력 관계에 대한 연구와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