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후원하고 배려한 세종에게 장영실이 보답한 최고의 성과물이 바로 자격루(自擊漏)다. 세종은 어떤 왕보다도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계 제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역사학자 신병주의 저서 ‘참모로 산다는 것’에 나오는 내용이다.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단어 중 하나가 ‘참모’다. 훌륭한 임금 곁에는 그에 못잖은 참모가 있었다. 세종대왕 때는 비천한 신분을 넘어 조선의 과학을 이끌었던 장영실, 청렴의 명재상 황희 등이 대표적이다. 참모라기보다 간신에 가까웠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권력 투쟁으로 수양대군(세조)의 참모가 되고 승승장구했던 한명회, 연산군의 폭정에 불씨를 당긴 임사홍, 개혁을 주창한 조광조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중종의 간신 남곤이 그렇다.

최근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문재인의 남자’다. 2012년 대선 후보 비서실장, 2017년 대선 선대본부 조직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5·18과 관련해 수배를 당한 이후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전기 기술자로도 일한 바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날을 샜던 조선의 역사나 이권 다툼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작금의 정치나 별반 다르지 않다. 실패한 대통령 곁에도 참모는 있었다. 그들은 지도자의 말을 듣는 귀의 역할은 했을지언정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입의 역할엔 충실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참모의 존재는 위기를 맞았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7년의 임란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겼던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 개혁을 추구하고 실학을 주창했던 정약용은 시대를 초월한 참모의 표상이다.

노 비서실장 또한 역사의 실험대 위에 섰다. 그의 역할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성패 여부도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해시계와 자격루를 발명하고 ‘과학 조선’을 견인했던 장열실의 자세를 본받았으면 한다. 노 비서실장은 전기 기술자답게 어느 인터뷰에서 “전기는 완벽한 세계다. 꼼수를 부리면 곧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국민의 관점에서 이렇게 바꿔 표현하고 싶다. “참모는 완벽한 세계다. 꼼수를 부리면 곧 죽음이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