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3년 1월, 선거법 위반으로 서울지검에 소환됐다. 당시 국민당 대표였던 정 회장은 경쟁 후보 지지자들의 대화 내용을 도청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 회장이 출두하자 순식간에 기자들과 현대그룹 관계자 등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맞아 정 회장의 이마가 찢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기자협회가 포토 라인을 제정했다. 포토 라인은 피의자가 소환될 때 잠시 멈춰 설 수 있도록 수사 기관의 출입구 앞 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이다. 피의자가 여기에 서면 기자들이 질문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포토 라인은 공인이 소환될 경우 국민의 알 권리라는 논리에 의해 관행적으로 운영돼 왔다. 1995년 노태우·전두환, 2000년 고 노무현, 2017년 박근혜, 2018년 이명박까지 5명의 전직 대통령이 포토 라인에 섰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포토 라인 앞에는 성역이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에선 피의자를 포토 라인에 세우는 예가 거의 없다. 얼마 전 일본 경제계 거물인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구속됐는데도 관련 사진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이나 독일도 피의자가 원하지 않으면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다.

며칠 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포토 라인을 그냥 지나쳤다. 이를 계기로 포토 라인 필요성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의 상징이자 수사 감시 효과가 있다는 찬성론에 맞서 반대론자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낙인 찍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광주에선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윤장현 전 시장의 출두를 대비한 포토 라인은 마련하지 않았지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출두를 앞두고는 포토 라인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토 라인에 서는 것은 여론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강제 구인장을 받은 전두환이 3월 11일 출두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찬반 논쟁을 떠나 사례별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장필수 전남본부장 bun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