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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질 높은 삶으로의 이동 … 새해 ‘워라밸’ 어때요
일에만 파묻히기 보다 삶과 균형 찾기
‘연봉보다 워라밸’ 직장 선택 기준도 변화
악기 배워 연주회 열며 능동적 소비
저녁 문화센터 직장인들로 북적
‘한달 살기’ 나홀로 여행객 증가세

2019. 01.10. 00:00:00

작품발표회를 앞둔 광주문예회관 발레교실 성인반 수강생들이 한창 연습 중이다. <광주문예회관 제공>

박치영 조선대병원 교수는 15년째 색소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음악으로 활력을 충전하고 있다. <박치영씨 제공>



2017년이 끝나갈 무렵, 소비트렌드 분석전문가 김난도 교수가 내놓았던 2018년 키워드는 ‘워라밸’이었다. ‘워라밸’은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를 줄여 부르는 말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최대 52시간으로 단축되면서 본격적으로 워라밸을 추구하려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올해는 워라밸을 넘어 ‘워커밸(work and consumer balance·근로자와 소비자간의 균형)’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지만 ‘워라밸’은 여전히 2019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에만 파묻히지 않고 개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는 이들의 긍정적인 삶을 만나본다.
인테리어 프리랜서 박성민(31)씨는 3개월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POP 글씨 쓰기를 배우고 있다. 학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독학하고 있다는 그는 연습 교재를 사서 훈련하고 있다. ‘예쁜 글씨’를 직접 써 주위 친구, 동료에게 선물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털실짜기와 종이접기도 배워본 경험이 있고 털실로 열쇠고리를 만들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박씨는 “퇴근 후에도 집밖에 나가 에너지를 소모하기 보다는 쉬면서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찾고 있었다”며 “글씨를 쓰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차분히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어 예쁜 글씨 쓰기를 취미삼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워킹맘 이상은(42)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린다. 저녁 6시가 되면 아직 업무를 끝내지 못한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을 뒤로 하고 퇴근을 서두른다. 가족들과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한 후 딸과 함께 운동을 하러 가는 시간이다.
이들 모녀가 2개월 전부터 시작한 운동은 요즘 대세라 불리는 ‘라틴 줌바’다. 평소 입어보지 못했던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바깥 세상과 차단될 정도의 볼륨 업 된 음악소리에 맞춰 강사의 동작을 따라하다 보면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린다.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회사 일도, 집안일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하루 딱 한 시간,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들로 뒤엉켜있는 머릿속이 말끔히 지워지는 기분이에요. 회사일과 집안일 등 잡다한 고민거리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 오히려 의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춘기 딸의 예민해진 성격도 나아진 듯 하고 엄마와의 관계 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워라밸’ 트렌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젊은 세대들의 직장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은 ‘연봉이 얼마인지’ 대신 ‘회사의 워라밸이 어떤지’로 바뀌었다. 젊은 직장인들을 주축으로 회사에 얽매이는 모습은 사라지고 기성 세대들 역시 그들의 변화를 따라가며 자기계발을 하려는 움직임도 긍정적이다.
‘워라밸’이 바꾼 가장 대표적인 라이프 스타일은 운동족과 취미활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돈 벌기에 바빴던 부모 세대와 달리 여유와 행복이 삶의 중요한 가치의 척도가 되면서 ‘적당히 벌고 잘 살고’ 싶어하는 워라밸 세대들에게 스포츠는 일상 속 필요 충분 조건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생활체육 전용공간인 광주 남구 다목적 체육관의 경우 평일 저녁시간이면 전 강좌에 걸쳐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요가나 검도, 필라테스, 라틴줌바, 성인발레, 다이어트 복싱 등 오전시간 이용이 불가능한 직장인들을 위한 저녁 강좌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 강좌는 매진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배드민턴 전용 구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체육관 역시 오후 7시가 넘어서면 빈 코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연령대의 운동족이 찾아온다.
‘워라밸’ 문화의 중심에는 ‘문화센터’도 있다.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높아지면서 보거나 듣는 ‘수동적 소비’에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는 ‘체험형’으로 바뀌고 있다. 가고 싶은 음악회 티켓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악기를 배우는 능동적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직접 체험하며 즐기는 ‘워라밸’ 문화의 중심에 문화센터가 있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이 운영하는 ‘유화교실’. <롯데백화점 광주점 제공>


직접 체험하며 즐기는 ‘워라밸’ 문화의 중심에 문화센터가 있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이 운영하는 ‘유화교실’. <롯데백화점 광주점 제공>



박치영(50) 조선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매주 화요일 퇴근 시간 무렵 흰 가운을 벗고 색소폰을 챙겨 병원을 나선다. 그는 15년째 색소폰과 동고동락하면서 ‘아마추어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색소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2년째 라포르 색소폰 앙상블의 단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정기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색소폰은 음역대가 인간의 음성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제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악기라고 생각했어요. 퇴근 후 매주 시간을 내 연습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색소폰은 제게 인생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활력을 주고 있어요. 연주회를 열 때마다 응원하러 오는 가족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최근 찾은 ‘광주문화예술회관 발레교실’ 작품발표회장은 전문 무용수 못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발레교실에 참여한 시민 100명은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동안 연습한 작품을 이날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광주시립발레단의 단원들이 직접 강사진으로 나서는 ‘발레교실’은 지난 2007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500명이 넘는 수강생을 배출했고 최근 직접 발레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면서 매회 신청 때마다 ‘클릭 경쟁’이 치열하다. 유아 초·중·고급, 성인반, 가족발레반으로 나뉜 발레교실에서는 수강생들이 발레 동작을 배울 뿐 아니라 바른 자세와 유연성·균형 감각을 기르는 기본 훈련을 받았다.
워라밸을 가장 반기는 곳은 역시 여행업계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개념이 일상화 되면서 직장내에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이는 곧 여행족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오전에는 병환중인 시부모님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일로 일주일을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박수연(41)씨는 다가오는 15일 과감하게 여행을 결정했다.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라며 들떠있다. 여행 동반자는 두 아이와 아이들의 친구 가족이다.
“지금의 생활을 벗어나 바깥 공기를 쐬고 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여행을 준비한다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다녀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욕도 생겨납니다.”
자녀들의 방학을 이용해 1~2개월 해외에 머물며 영어교육을 겸한 ‘한 달 살기’ 여행이나 직장인들의 나홀로 여행도 꾸준히 늘고 있다. 검색엔진 스카이스캐너가 조사한 지난해 상반기 한달살기 여행 수요는 전년도 보다 18% 증가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워라밸 트랜드가 확산되면서 부담없이 다녀오기 좋은 국내 여행 뿐만 아니라 30~40대 직장인들의 한달살기 수요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보람·백희준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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