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시인의 포구마을 여행기는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해냄 제공>

“안녕, 이정표 앞에 멈춰 선 나는 눈인사를 한다. 낯선 마을들의 이름이 적힌 이정표 앞에 섰을 때 여행지는 그 마을의 이름 앞에서 어떤 영감을 느낀다. 새로운 삶 시간, 언덕, 풍경, 꽃, 흙냄새…. 녹색 바탕에 흰색의 페인트로 적힌 마을들의 이름 속에는 그 마을의 과거와 현재, 사랑과 추억의 모든 싱싱하고 쓸쓸한 풍경들이 배어있다. 녹물이 배어있다 한들 어찌 그 이정의 문신 앞에서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므로 모든 여행자들은 이정표 앞에 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눈빛을 지니게 된다.”

“인간의 품위와 사랑의 향기가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작품”을 쓰는 것이 나무와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는 시인이 있다. 바로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가 그렇다. 그의 글에서는 삶의 희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번에 곽재구 시인이 여행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펴냈다. 지난 2002년 첫 출간된 이후 16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책에는 초판에서 아쉬웠던 표현들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여행지에서 시인이 직접 찍은 수백 장의 슬라이드 사진들 중 59장이 실렸다. 또한 초판의 몇몇 사진을 교체하고 새로 배치해 책의 만듦새를 다졌다.

전국 19개 포구에 머물며 60여 곳을 들른 시인의 여행기는 전국에 독서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MBC TV프로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 추천도서로 선정돼 인세와 판매수익금 일부가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됐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명저 100선’에도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모두 25개 이야기로 꾸려진 이번 책에는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서 시작해 경상도, 제주도, 충청도의 포구를 거쳐 전라도 해남 어란포구에서 여정을 끝맺는다.

저자는 “포구기행을 하는 동안 포구의 모습은 내게 환생(還生)의 개념으로 다가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작은 배가 아침 햇살을 몸에 두르며 포구를 떠났다가 저녁 햇살 속으로 돌아오는 모습. 이 모습이 내게 불변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인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네’에는 8개의 정갈한 산문이 수록돼 있다. ‘겨울꽃 지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화진 가는 길), ‘소라고둥 곁에서 시를 쓰다’(선유도 기행), ‘하늘 먼 곳, 푸른빛의 별들이 꿈처럼 빛나고’(어청도에서), ‘아, 모두들 따사로이 가난하니’(삼천포 가는 길), ‘그곳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동해바다 정자항에서) 등이다.

2부 ‘절망한 것들이 날아올 때’는 주로 전라도 지역의 포구에 관한 글이다. ‘묵언의 바다’(순천만에서), ‘모든 절망한 것들이 천천히 날아오를 때’(향일암에서 나무새의 꿈을 만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팥죽집 가는 길’(회진 장터로 향하는 새벽길), ‘개펄이 만든 지평선이 보이네’(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등이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길 위에서 추는 춤’이라는 주제로 9개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바다로 가는 따뜻한 바람처럼’(우도 가는 길), ‘신비한 하늘의 아침’(조천), ‘저 너머 강둑으로 가고 싶어요’(바람 아래 해수욕장을 찾아서), ‘동백숲 속에 숨은 선경’(지심도 가는 길)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포구의 여정에서 바닷가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와 자신의 여행담을 잔잔하게 들려준다. 개펄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깔아준 이불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바닷가의 낯선 모텔에서 엽서를 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릴 적의 추억과 상처를 떠올리며 시를 향한 열망과 좌절 등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시인의 순정한 마음이 담긴 포구마을 여행기는 세파에 지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다. <해냄·1만5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