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의 ‘유쾌한 일탈’로 연말이 뜨겁게 달궈졌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과 빈 필 단원으로 구성된 ‘필하모닉스’가 지난 17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아시아투어 중 한국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광주일보가 창사 66주년을 맞아 기념공연으로 WCN과 공동 주최한 이번 무대는 1700여 석의 객석을 가득 메우며 큰 관심을 모았다. 2007년 혜성처럼 등장한 ‘필하모닉스’는 베를린 필 악장을 맡고 있는 노아 벤딕스-발글레이를 비롯해 세바스티앙 거틀러(바이올린), 틸로 페히너(비올라·빈 필), 스테판 콘츠(첼로·베를린 필), 오돈 라츠(더블베이스·빈 필 수석단원), 다니엘 오텐잠머(클라리넷·빈 필 수석), 크리스토프 트락슬러(피아노) 등 7명으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클래식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정통 클래식과 재즈·팝송·탱고·캐롤 등 장르를 뛰어넘는 무대를 선사하며 전세계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인들이 선보이는 무대는 역시 달랐다. 연주자 전원이 참여한 세련된 작곡·편곡과 완벽한 연주로 관객들은 ‘귀 호강’을 누렸다. 연주자들은 발 구르기·성악·현 뜯기·휘파람 등을 동원하며 시종일관 파격을 구사했지만 탄탄한 연주실력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시도였기에 관객들은 애정을 가지고 관람했다.

무대는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문을 열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무곡을 완벽한 호흡으로 풀어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진 곡은 첼리스트 슈테판 콘츠가 작곡한 ‘새로운 만족’이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크리스토프 트락슬러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1번’에서 발췌한 느린 멜로디가 이어졌다. 이대로 끝을 맺는가 싶더니 모든 멤버가 ‘쿵’ ‘쿵’ 발을 두 번 구르자 팝과 디스코를 넘나드는 흥겨운 무대가 이어졌다.

공연은 ‘보헤미안 랩소디’에 이르러 절정을 맞았다. 필하모닉스는 최근 직접 편곡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타이틀로 내건 신보 ‘비엔나 베를린 뮤직클럽’을 발매해 국내 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6분37초 동안 연주된 이 곡은 1분 정도 피아노 독주로 시작한 뒤 현악2중주에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그리고 피아노가 더해진 독특한 구성으로 발라드에서 오페라, 록 장르로 전환되는 원곡의 재기 발랄함을 살리면서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공연 전반부를 스테판 콘츠가 주도했다면 후반부는 베를린 필 악장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노아 벤딕스-발글레이가 이끌었다. 그는 ‘헝가리 무곡 1번’을 연주하며 브람스 특유의 작품세계와 흥겨운 집시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기교를 펼쳤다.

빈 필 수석단원인 클라리네티스트 다니엘 오텐잠머는 이날 무대 사이 사이 해설을 곁들이며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줬다. 그는 부상으로 아시아투어에 참여하지 못한 비올리스트 틸로 페히너의 소식을 전하며 “젊은 앙상블을 상징하는 빨간색 슈트(양복)는 원래 페히너의 몫인데 오늘은 트락슬러가 입었다”며 “생각보다 잘 어울려 다행”이라며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공연 뒤 열린 사인회에서 ‘필하모닉스’가 관객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날 필하모닉스의 신보는 400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2부 서막을 연 ‘러시아 서곡’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세바스티앙 거틀러의 노래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슈테판 콘츠가 작곡한 이 곡을 통해 그는 전례 음악풍의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호응을 얻어냈다.

피날레는 스팅의 ‘잉글리시맨 인 뉴욕’이 장식했다. 때로는 왈츠, 때로는 재즈가 연상되는 탁월한 편곡으로 스팅의 명곡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원곡의 색소폰 부분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분출한 오텐잠머의 클라리넷 연주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연주자들은 영화 ‘007’ 시리즈 주제곡과 신보 수록곡 ‘발칸 파티’를 앙코르로 들려줬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장의 열기는 사인회로 이어졌다. 연주자들은 관객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감사의 말을 주고 받았다.

사인회에서 만난 백자희(48·광주시 북구 운암동)씨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최고의 연주로 꼽았다. “연주자들의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졌다”며 “실력파 연주자들이 모인 앙상블이라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집중해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