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德壽宮)은 조선의 세조 임금이 며느리 수빈 한씨와 그 소생인 월산군·자을산군·명숙공주의 기거를 위해 마련해 준 사저였다. 당시 요절한 의경세자의 아내인 수빈 한씨는 궁중법도에 따라 출궁하게 됐다. 이후 자을산군이 성종이 되자 수빈 한씨도 인수대비로 대궐로 돌아오면서 이 집은 월산대군 소유가 된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후 몽진에서 돌아온 선조가 이 저택을 개조, 임시 거처인 정릉행궁으로 사용하면서 처음 궁궐이 됐다. 이후에는 창덕궁 중건 이후 잊혀졌다가, 일본의 공격에 위협을 느끼고 아관파천을 했던 고종이 1897년에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재단장해 10년간 대한 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됐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1907년 고종 퇴위 후에 생겨났으며 그 전에는 경운궁으로 불렸다.

이 덕수궁은 주변 돌담길로도 유명하다. 정동길로도 불리는 이 길은 도심 속 걷기 좋은 명소로 알려져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꼽힌다. 아름다운 풍경과 인근의 많은 문화 시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거리였다. 수많은 드라마와 소설 및 노래에도 자주 나오는데, 연인들이 이 길을 걷고 나면 헤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는 옛날 이곳에 이혼 판결을 하는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덕수궁 돌담길(총 1.1km )이 지난 7일부터 전면 개방됐다. 서울시가 그동안 출입을 통제했던 주한 영국 대사관 정문부터 직원 숙소에 이르는 70m 구간을 개방한 것이다. 덕수궁 담장 바깥쪽이 영국 대사관 소유여서 담장 안쪽으로 새 길을 냈다. 앞서 서울시는 2014년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잇는 사업을 추진해 오다가 지난해 8월 영국 대사관이 1959년부터 점유해 온 대사관 후문 쪽 100m 구간을 반환받아 개방했다. 그리고 이번에 남은 구간을 연결했으니 59년 만에 덕수궁 둘레길 전 구간이 이어진 셈이다.

이 아름다운 돌담길은 또한 아픈 역사를 머금고 있다. 국권 침탈을 노골화한 일본 제국의 고위 인사들이 이 길을 거쳐 대한 제국의 황제를 겁박하러 갔던 것이다. 을사조약 현장인 중명전 역시 이 길을 거쳐야만 갈 수 있었다. 돌담길을 걸으며 아픈 우리의 역사를 되새긴다.

/박지경 서울취재본부 부장 j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