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각하, 임무는 마침내 완료됐습니다. 시계(視界) 양호(良好)한 삶의 영원한 안식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94세로 타계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지난 5일(현지시간) 워싱턴 대성당에서 엄수됐다. 장례식에는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가족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젊은 시절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전투기 조종사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44년 임무를 수행하다 격추되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표류 끝에 구조돼 훗날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에 올랐다.

장례식에서는 조종사들의 용어인 ‘시계 양호’에 대해 그가 생전에 했던 말도 소개됐다. “태평양 전쟁 시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하나 있다. 이륙 직전 긴장의 순간, 시계 양호라는 말이 들려오기를 학수고대했다. 그것은 완벽한 비행을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이제 인생도 똑같이 느낀다. 바바라와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고 평온하다.”

시계 양호는 비행 중 기상 상태가 좋다는 말이다. 군사 용어이지만 충분히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장(戰場)에서처럼 인생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막막한 날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시계(視界)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광주형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안갯속이다. 경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비핵화 협상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정쟁으로 날을 새우던 국회는 슬그머니 세비를 인상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반면 그 어느 해보다 추울 거라는 올 겨울, 서민들은 말 그대로 ‘시계 제로’에 내몰려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젊은이, 앞으로의 비행에 시계 양호한 날이 가득하길 기원하네’라고 격려했다. 그의 말은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닐 터다. 일자리가 없어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장삼이사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일 것이다. 시계 양호와 시계 제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공공선과 기득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시계(視界)가 달라진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