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세습’이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들리고 있다. 돈·지위·권력은 물론 이제는 일자리까지 아들로 손자로 이어지는 시대가 됐다. 마치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의 작위처럼 혹은 봉건 시대의 계급처럼, 한 번 정해진 것들이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여기에 노력도 없이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얻는 이들의 품격 없는 언행이,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이고 있다.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자리를 계속 이어받으니 평범한 이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탈락자의 수는 늘어가고 그들의 한숨과 불만은 쌓여만 간다. 누구나 자신의 것만 고집하다 보니 대중·공공의 의미는 퇴색하고, 눈앞의 이익을 탐하다 보니 먼 미래에 대한 관심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두의 위기가 시작된다.

과장된 듯하지만 이는 이미 과거 상당수 국가들이 겪었던 바다. 멀리 로마의 전성기는 고위층의 봉사와 기부·헌납으로 가능했다. 그것은 전통이었고 자발적·경쟁적이었으며 의무이자 명예로 인식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고위층에 권력이 집중됐고,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결국 로마는 멸망했다. 지금의 선진국인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도 부유층이나 고위층의 전쟁 참여, 기부, 봉사, 희생 등이 그 밑바탕에 있었다.

대조적으로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고위층·부유층의 앞뒤 가릴 것 없는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 열 살짜리 초등학생부터 20대, 30대, 40대, 50대 등 세대 구분 없는 이들의 천박한 말투나 행태에서 품격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들다. 예의범절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인식에서부터 저급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같은 고위층·부유층들의 이면을 보면서 ‘귀족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거창한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가진 자들이 주변이나 자신의 아래에 있는 평범한 이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자신이 가리고 싶은 것마저 곧 드러나고 말 것이라는 점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