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은 적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공포’를 퍼뜨리는 방법으로 현재의 정치 상황을 바꾸려 드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집단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러 집단은 암살이나 자폭 같은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공격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물리적인 힘으로 가능한 것보다 훨씬 큰 정치적 결과를 이끌어 내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러 집단으로는 ‘아사신 파’로 불리는 중세 중동의 ‘니자리 파’를 들 수 있다. 니자리 파에서 요인 암살을 위해 파견한 ‘피다이’들은 목표로 지목된 인물의 곁에서 몇 년씩 충실한 부하로 봉직하다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단검을 사용해 살해했다. 피다이들의 이 같은 행동 패턴은 당시 중동의 군주들로 하여금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언제든 참혹하게 살해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갖게 했다.

당시 ‘산속의 노인’으로 불리며 1160년부터 30년간 니자리 파를 이끈 라시드 알딘 시난은 자신을 위협하는 중동의 맹주 살라딘에게 “나는 당신의 진영 내부에서부터 당신을 무너뜨리고, 당신의 집에서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살라딘은 결국 1174년과 1176년 두 차례에 걸친 피다이의 암살 기도를 겪은 뒤 더 이상 니자리 파에 손을 대지 못했다.

최근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공산 반군에 대항하는 암살단을 조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필리핀 공산당의 특수 조직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두테르테의 설명이다. ‘테러에는 똑같이 테러로 대처하겠다’는 것이겠지만, 그 배경에는 ‘암살에 대한 공포’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공개적으로 ‘암살단 운영’을 선포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공개 선언은 국민에게 극심한 공포를 심어 줄 우려가 있으며, 이는 테러 집단의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국의 고유한 사회·정치 상황을 ‘보편과 상식’이라는 기준에만 맞춰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급증하는 만큼 우리도 타국의 테러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