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다문화’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단어가 돼 버렸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주부, 다문화 센터 등. 도시든 시골이든 외국에서 이주한 이들과 그 자녀들이 이미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탓일 게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베트남, 몽골, 일본 등과의 교류로 인해 다문화 가정은 예전에도 어느 정도 있어 왔다. 이중 다른 시기보다 원나라(몽골)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에서는 다문화 혼혈인으로서 최초의 왕까지 탄생하게 된다. 그가 바로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이다.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忠烈王, 1236~1308)과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쿠툴룩켈리쉬)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선왕은 고려 왕의 아들이자 쿠빌라이의 외손자로 태어난 데다 나중에 원나라 황제의 사위가 됐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스펙을 가진 왕이었다. 스펙만큼이나 성인이 된 뒤에는 아버지 충렬왕보다 권세가 높았으니 충렬왕은 아들을 견제하느라 바빴다.

특히 원나라에 패해 쫓겨난 왜적이 고려를 침범했을 때, 충렬왕은 강화도로 피신했으나 충선왕은 쿠빌라이에게 원병 1만 명을 요청해 왜적을 물리쳤다. 이로 인해 위기관리 능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원의 직간접적인 압력으로 충렬왕은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충선왕이지만 왕비인 계국대장공주(부타시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여러 부인 가운데 조비를 가장 총애한 탓에 계국대장공주를 멀리한 것이다. 참다못한 공주가 이 사실을 원에 알리면서 충선왕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조비와 그 가족은 원나라에 압송돼 고초를 겪었다. 다문화 출신 왕이지만 힘없는 나라의 비애를 겪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남 지역이 다문화 학생 1만 명 시대를 맞았다. 이미 다문화 2세들이 성년이 돼 취업을 한 경우도 많아 다문화 3세 아이들의 수 역시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문화 정책이 완성되려면 먼저 다문화 자녀들이 정당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고, 취업에서도 차별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배려도 필요하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