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소위 6월 항쟁 이후였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자신의 권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 이 단어는 법적인 의미로만 사용됐었다. 이후 모두에게 공정함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기득권은 곧 적폐로 불리며, 혁신의 대상이 됐다.

사실 기득권은 개인의 재산권에 대해 ‘법률에 의해 이미 주어진 권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법률로서 정해진 권리는 이후 개정이 되더라도 일정 기간 보장해 준다. 그러나 법 테두리 안에 갇혀 있던 기득권이 정치·경제·문화·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확대 사용되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계속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권리를 강제로 유지하려는 행위를 칭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1987년 8월 민정당 총재가 된 노태우 씨가 ‘기득권도 과감히 버린다는 각오로’라고 언급한 뒤 정치권에서 기득권은 지배적이지만 비리나 부패한 세력, 또는 파벌로 이해됐다. 경제계에서는 독과점을 통해 사익을 챙기는 재벌, 문화계에서는 오랜 기간 정책이나 사업의 특혜를 받는 특정 예술인, 일상에서는 주변의 피해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해만 중시하는 ‘갑’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기득권 세력은 필연적으로 ‘세습 DNA’를 갖는다. 내가 가진 것도 모자라 자녀나 손자까지 대대로 그러한 특권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폐해가 뒤따르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면서 국가 전반의 경쟁력이 급락하고, 불안 요소가 사회 곳곳에 내재돼 미래는 암울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것을 쉽게 내놓을 리 없다.

‘광주형 일자리’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최근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고용과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단다. 이는 스스로 귀족임을, 기득권 세력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들이 가진 이 특권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광주형 일자리’가 빛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