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몰래 군사를 다시 진격시켜 성 밖에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안으로 발사하여 진 안에 떨어뜨렸다. 적이 그 제도를 몰랐으므로 다투어 구경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만져 보는 중에 조금 있다가 포가 그 속에서 터지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나갔다….” 선조25년(1592년) 음력 9월 1일 자 ‘선조 수정실록’ 기사에는 조선군의 비밀 병기가 등장한다.

경상좌병사 박진이 지휘하는 조선군은 왜군이 점령한 경주성을 탈환하려 시도했다. 이때 선보인 무기가 ‘비격진천뢰’였다. 왜란이 발발하기 한 해 전 화포장 이장손이 처음으로 발명한 신무기였다. 실록에는 ‘진천뢰를 대완포구(大碗砲口)로 발사하면 500~600보를 날아가 떨어지는데, 얼마 있다가 화약이 안에서 폭발하므로 진을 함락시키는 데는 가장 좋은 무기였으나 그 뒤에는 활용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부연 설명이 달려 있다.

비격진천뢰는 요즘으로 치면 시한폭탄이었다. 폭탄 내부에 있는 도화선의 길이를 조절해 폭발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기존 총통은 화약을 폭발시켜 구형 탄환을 멀리 보내 대상물을 격파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비격진천뢰는 포신이 짧고 구경이 큰 ‘대완구’라는 포로 발사해 일정시간 후 폭발, 내부 쇳조각을 비산시키는 폭탄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비격진천뢰 외에도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기존 전선에 철갑을 씌운 돌격선 ‘거북선’을 비롯해 종래의 화차(火車)를 개량해 승자총통 40여 문을 장착한 ‘변이중 화차’가 있었다. 이러한 신병기는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최근 고창군 무장읍성(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성곽) 동쪽 성벽 근처 군기고 터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이 발굴됐다. 모양은 지름 21㎝의 구형이고, 무게는 17~18㎏이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유물이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군이 무장읍성에 입성할 당시 관군이 도망가면서 은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때 무장읍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120여 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발굴된 조선의 무기는 격동의 구한말 역사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펼치게 만든다.

/송기동 편집부국장·문화2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