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승의 짜릿함을 맛본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최근 끝난 두산과 SK의 한국시리즈는 ‘강 건너 불구경하기’였을 것이다. 누가 이겨도 상관없고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여유를 부리며 볼 수 있는 경기였으니까.

두산은 정규 시즌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데다, 전문가와 팬들 모두 ‘어우두’를 외치며 ‘어차피 우승은 두산’이라 했지만, 힘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방망이는 득점권에서 싸늘하게 식었고, 무려 7개의 실책을 범할 정도로 끈끈한 수비 조직력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반면에 SK는 가장 SK다운 경기를 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어 시리즈를 주도했다. 번트 작전을 통해 한 베이스를 더 보내는 ‘스몰볼’에서 벗어나 홈런을 펑펑 터뜨리는 ‘빅볼’로의 전환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6차전 9회 최정의 홈런이었다. 두산 린드블럼이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겨 둔 상황에서 동점포를 허용해 결국 시리즈를 내준 것은 ‘공 하나의 중요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할 것 같다.

한국시리즈를 보며 광주·전남 출신 선수들이 누가 있나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두산의 허경민·최주환, SK의 김성현·강승호 등. 특히 양의지가 두산에서 펄펄 나는 것을 보면 왠지 가슴이 아리다. 특히 공격형 포수의 부재가 아쉬운 KIA 팬들로서는 FA 자격을 얻게 되는 양의지를 보는 시선이 남달랐을 것이다.

SK의 정영일도 반가운 이름이다. 진흥고 시절 대통령배 대회에서 이틀 연속 13과 3분의 2이닝에 탈삼진 23개를 뽑아내며 고교 야구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운 선수였으니. 하지만 투구 수 242개가 유망주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LA 에인절스에 입단했지만 결국 국내로 유턴했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서 5경기에 출전해 21타자를 상대로 단 3안타 무실점 호투를 펼친 그는 SK 마운드의 버팀목이었고 사실상의 시리즈 MVP였다. 양의지는 과거 한기주에 밀려 KIA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정영일은 힘들 때 고향 팀에서 품어 주지 못했다. 이들이 언젠가 광주를 안방 무대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유제관 편집1부장·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