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고기는 종기와 상극이었다. 꿩이나 닭, 오리 등은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종기 환자에게는 절대 처방하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종기 환자에게 꿩을 처방하는 것을 독살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꿩 고기가 종기에 금기인 것은 반하(半夏) 때문이기도 하다. 반하생(半夏生)의 준말인 반하는 천남생과의 다년초로서 그 괴근(塊根·덩이뿌리)은 맵고 독성이 있느나 담, 해수, 구토 따위를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중략) 꿩고기는 겨울철 대지가 얼었을 때에 올려야 하는데, 전순의가 이를 무시하고 문종에게 계속 섭취시킨 것은 고의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방인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고전적 정의가 된 지 오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는 입맛대로 역사의 기록을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패자는 아니 사자(死者)는 말이 없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가까운 조선의 역사도 상당부분 승자의 기록일 수 있다. 정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조작하려는’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비단 조선의 얘기만이 아니라 근현대사의 역사 또한 그렇다.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을 했다. 영어 신세가 된 작금의 두 전직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쌓인 적폐는 사실은 진실이나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변조한 것에서 비롯됐다.

역사는 그처럼 권력에 따라 휘발성이 강한 분야다. 그 가운데 최고 권력자인 왕의 신변과 관련한 내용은 더더욱 그렇다.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일으키며 대중 역사서의 지평을 연 ‘조선 왕 독살사건’은 그 같은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최근 역사학자 이덕일이 2005년 펴낸 ‘조선 왕 독살사건’이 재출간됐다. 출간 13주년, 110쇄, 30만 부 돌파를 기념해 특별 양장본으로 출간된 책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역사 분야 최고 스테디셀러다.

저자는 조선 왕 4명 중 1명이 독살당했다는 가정 하에 역사를 들여다본다. 만약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누가 왜 왕을 죽이려했을까. 저자는 풍부한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고증과 치밀한 추론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한 것을 ‘군약신강’(君弱臣强)이라고 하는데, 조선 왕조 500년을 통들어 이 구조는 크게 두 개의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다. 조선 전기는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즉위한 계유정난이고, 조선 후기는 율곡 이이를 종주로 삼는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집권한 인조반정이다.”

저자는 인조반정 이후 ‘군약신강’은 조선 사회만의 비밀이 아닌 청나라도 아는 사실이었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북벌군주 효종이 송시열과 독대 직후 만 마흔 살이 안 돼 급서한 것이나, 만 열여덟 살에 보위에 오른 현종이 정권을 서인에서 남인으로 대체하다가 서른세 살에 급서한 사실을 든다.

저자가 책에서 파헤치는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조선 전기에는 계유정난을 계기로 공신집단이 생성되고 후기에는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노론) 독주체제가 완성된다.

“조선 왕 독살의 구조는 계유정난과 인조반정 이후 형성된 공신집단과 거대 정당에 국왕·세자가 어떠한 사안들 두고 충돌을 향해서 달려가다가 국왕·세자가 갑자기 죽거나 쫓겨나 죽는 경우가 반복되는 구조이다.”

그렇게 해서 죽은 왕들이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사도세자, 정도, 효명세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후 정국은 공신집단과 서인(노론) 중심으로 회귀했다.

저자는 이 구조가 과거형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왕과 신하로 대변되는 권력 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순을 개혁하려는 이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반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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