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가 불쑥 시야에 들어온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참 혼란스럽고 민망하던 참에, 지식인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최근 문재인 퇴진을 촉구하는) 320명의 이름으로 내놓았다는 ‘지식인 선언’에서 그 ‘지식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묻는다고 한다. 개념 오용이나 악용은 다른 어떤 일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위태롭다. 개념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소통과 이해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특정한 의도가 있는 경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칭하는 이들에게는 지식인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지식인의 의미와 역할을 살피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사건이 있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라는 유대 계통의 프랑스 육군 장교가 적국인 독일에 군사 기밀을 넘겨줬다는 반역 혐의로 유죄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적 분열이 심하고 여러모로 불안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공동체의 희생양이었다. 마침 유대인 혈통의 드레퓌스는 보수 언론과 군사 조직에서 찾던 ‘제물’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1894년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물론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범이 잡히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지만 드레퓌스에게 내려진 종신형 판결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이 일을 비판하는 사람도 없었다. 조국에 대한 그 ‘뜨거운 사랑’을 외쳐대는 사람들과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 작가 에밀 졸라만 예외였다.

‘목로주점’ 등으로 유명한 에밀 졸라(1840-1902)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졸라는 1898년 1월 13일 자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저 유명한 고발문을 통해 사건을 조작한 정부와 프랑스군 참모본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졸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분열을 부추기는, 그 ‘권력의 추악함’을 결코 눈감아 줄 수 없었다. 졸라의 행동은 많은 지식인과 청년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 냈고 결국 1906년에야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바로 이런 졸라의 행동을 ‘지식인의 탄생’ 순간이라고 말한다.

졸라와 드레퓌스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졸라는 ‘완벽한 타인’의 일일 뿐만 아니라 이익은커녕 오히려 큰 위험한 일에 끼어든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졸라는 자신의 행동이 ‘진실을 밝히려는 지극한 열정’에 따라서 행한 ‘영혼의 외침’이라고 말한다. 어떤 계산이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신념이 전부였다는 뜻이다. 졸라에게서 우리는 지식인의 원조와 전형을 본다. 지식인은 자신의 이득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지식을 밑천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거나 더 많은 힘을 갖기 위한 모든 행위는 지식인의 행동이 아니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지식인이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람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른 보기에 지식인과 소위 전문가는 비슷하다. 하지만 전문가는 말 그대로 좀 더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좀 더 안다고 해서 지식인은 아니다. 전문가는 신념이 아니고 실리를 위한 지식을 도구로 사용하는 기능인이고 직업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지식은 특권이고 자본이다. 반면에 지식인의 조건은 자기비판적인 성찰 속에서 세상의 모든 독단을 거부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연대 의식이다. 따라서 전문가는 지식인이 될 수도 있지만 지식만 있다 해서 지식인은 아니다.

지식인의 책임과 관계없이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칭하는 것은 참 염치없는 일이다. 세상 어디에도 반세기를 넘은 휴전 상태가 더 계속되기를 바라며, 탈원전을 반대하는 지식인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이름 석 자도 밝히지 못하는 지식인들이라니, 짠하기조차 하다. 그러면서도 지식인이라는 명함을 사용하는 이들에게서 지식인은커녕 전문가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것은 아닐까? 또는 아직도 지식인은 대단한 권력이라는 미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