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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2018. 10.19. 17:32:38

비엔날레, 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민화를 몇 년째 배우고 있는 그녀가 얼마 전 직접 그린 작품 한 점을 보내왔다. 그림 속에는 풍염(豊艶)한 모란 몇 송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시(詩)도 쓰는 그녀가 굳이 모란을 택한 것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마냥 기다렸던 시인 영랑을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없이 사는 내가 애처러워서(?) 부자 되라’는 뜻을 담아 보낸 것일 거라고 제멋대로 짐작해 본다. 흔히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 불리는 모란은 부귀(富貴)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옛 그림에 등장하는 꽃이나 동물은 이처럼 어떤 소망을 담고 있다. 복을 기원하는 옛사람들의 기복(祈福) 주의가 그림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벌써 30년 전쯤이지만, ‘동양화 읽는 법’이라는 책을 처음 접하고 ‘아하 그렇구나’ 탄성을 지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는 초충도(草蟲圖)는 부부 화합을 기원한 그림이다. 예전 선비들의 과거(科擧)에 대한 열망도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게는 등딱지(甲)가 있기 때문에 장원 급제를 상징한다.
그림과 시(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상징과 비유를 사용한다는 것일 게다. 비유 중에서 가장 알기 쉬운 것은 비슷한 모양을 가진 두 사물을 직접 비유하는 직유(直喩)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쟁반 같이 둥근 달’처럼.
하지만 ‘상징’의 경우 작가가 제작 의도를 밝히지 않고 감춰 놓는다면 여간해서는 알아채기 어렵다. 다만 비유나 상징이 적절한가는 별개의 문제다.(네모진 쟁반만 많이 본 요즘 아이들은 ‘쟁반 같이 둥근 달’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작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독창적인 자기만의 비유와 상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가령 이번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중에 ‘일본군 성노예’라는 작품을 한번 보자. 일본군의 만행에 관한 증언을 적은 종이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데, 네모진 종이 모서리는 모두 불에 그을려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작가는 전쟁에 불탄 삶과 그 삶에 대한 증언조차도 불에 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역사적 기억이 쉽사리 유실될 위기에 놓인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한다. 다시 말해 종이가 불타고 재가 되듯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표현하고자 했을 수도 있겠다.

다시 보는 ‘하늘과 땅 사이’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시나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은 순전히 독자나 관람객의 몫이다. 예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제1회 비엔날레 대상 작품 ‘잊어버리기 위하여’에 얽힌 일화는 지금 생각해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2000여 개의 맥주병 위에 폐선(나무 보트)이 얹혀 있어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쿠바를 탈출한 난민들이 술을 마심으로써 고국을 잊고자 했던 상황을 상징한 것이라는데, 어느 노부부가 이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영감, 인자 그만 보고 갑시다. 오래 본다고 안다요? 다 배움이 깊어야 아는 법이제.” “모르긴 뭘 몰러? 임자는 꼭 날 무시해야 쓰겄는가.” “글먼 이것이 다 뭣이다요?” “뭐긴 뭐여. 인생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제.”
그때 그 작품을 이번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한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그것 말고도 또 있었다. 강연균 화백의 ‘하늘과 땅 사이’ 연작 중 네 번째 작품이 20녀 년 만에[ ‘귀환’한 것이다. 1995년, 망월동 묘역까지 4km 길을 따라 줄지어 선 1200여 장의 만장이 바람에 나부끼고 가로수 사이에 꽃상여가 높이 떠 있는 모습은, 천진(天眞)한 아이의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장관이었다. 영령들의 위령과 천도를 상징화했다는데, 아마도 설치미술(installation art)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야외 전시였을 것이다.
강 화백은 당시 민중미술인은 물론 여러 단체에 만장(輓章)으로 사용할 천을 보낸 뒤, 거기에 글과 그림을 쓰거나 그려 오도록 요청했다. 또한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정읍 어느 마을에 남아 있던 꽃상여를 거금 450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만장은 원래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이나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이다. 주검을 산소로 옮길 때에 상여 뒤에 들고 따라가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다.(얼마 전 만난 강 화백은 그동안 ‘골동품 하는 애’들이 수없이 찾아와 만장과 상여를 팔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고이 간직해 왔다고 회고했다.)
망월동 가는 길에 나부꼈던 그 만장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2018년 광주비엔날레(아시아문화전당)로 옮겨 와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때는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이젠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인사들의 글과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김근태, 임채정, 김상곤, 도종환, 이소선…. 그중에서 시인 신경림이 쓴 글은 필체가 유려해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라피를 연상하게 할 정도다. 시만 잘 쓰는 줄 았았더니 글씨도 일품이다.

탄성 자아내는 북한 그림들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 작가들의 그림인 ‘조선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조선화는 북한식으로 발전시킨 동양화인데 이번에 여러 작품을 감상하면서 깜짝 놀랐다. 체제 선전성이 강한 그림들만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정수인 주체화도 당연히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산수화를 비롯해서 호랑이를 그린 동물화, 여기에 그동안 북한에서 전통이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문인화까지 나왔다. 북한의 산수화에는 뜻밖에도 파도를 주제로 삼은 그림이 많다는 점도 놀라웠다. 금강산을 주제로 한 두 점의 그림은 통렬한 개성으로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북한 미술의 다양한 장르와 표현력의 깊이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야심찬 기획’이라는 설명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11월11일, 66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제 딱 3주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아직 가 보지 못했다면 빨리 서두를 일이다. 혹시 그림을 잘 알지 못한다 해서 망설이는가? 그럴 필요 없다. 그림에 대한 무지는 죄가 아니지 않나.
그러니 일단 가 보자. 가서 ‘맥주병과 빈 배’ 앞의 그 할아버지처럼 보고 생각하고 느끼자. 문화시민으로서, 가 본 사람과 가 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느껴 보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거기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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