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광주시 서구 화정동 서초등학교 인근 주택가. ‘화정2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건설공사’라고 적힌 높이 4~5m짜리 대형 펜스가 좁은 주택가 골목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펜스 안을 들여다보니 축구장 3개 크기(2만5000㎡)의 공사장은 3개월 전부터 중단된 채 출입이 통제됐다. 펜스 주변으로 빼곡히 주차된 승용차들은 골목길 통행을 힘들게 했고 시야를 가린 높은 펜스만 눈에 꽉차 들어 답답하게 했다. 공사장 앞에 마련된 건설 인부들을 위한 식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을 고쳐보려고 공사를 시작한 것 아니냐”면서 “언제까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생활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광주시 서구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장기 표류할 처지에 놓였다. 대법원이 최근 해당 주민들이 제기한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지정처분 등 무효확인 소송’과 관련, “적법한 주민 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만큼 관련 사업처분은 모두 무효”라고 판시한 광주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서다.

이날 한국토지주택공사 광주전남본부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정모씨 등 10명이 광주시 서구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화정 2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사업지구로 지정된 지 10년 만인 지난해 12월 첫 삽을 떴다가 5개월 만에 중단된 이후 끝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당장, 서구청은 법원 판결로 LH의 사업시행자 지위도 무효화돼 어설픈 행정 처리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 동의절차와 사업시행자 재지정 절차까지 거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대로라면 공사 재개가 올해안에 이뤄질 지도 미지수다.

서구청은 일단, LH를 사업시행자로 재지정하는 게 조속한 사업 추진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지난 8일 부랴부랴 LH 광주전남본부를 방문, 협조를 요청한 상태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LH도 사업시행계획을 인가받아 관련 절차를 진행하던 중 ‘무효’ 판결을 받은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사업 포기·재추진 여부를 면밀히 검토중이다.

LH는 서구청측에 이달 말까지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도 10년 넘게 도시 환경정비 사업이 표류하면서 슬럼화됐던 주변 환경이 언제 나아질 지 장담하기 어렵게되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H가 화정2지구에 공급하는 아파트(440가구)는 광주지역에 4년 만에 공급하는 분양아파트(332가구)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LH는 공공임대, 국민임대, 영구임대사업 등 공공기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임대사업을 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4년 10월 효천2지구(521세대)에 분양아파트를 공급한 이래 여태껏 분양아파트를 공급하지 않았다.

LH 아파트의 경우 민간 아파트에 비해 분양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입지 여건 등이 장점으로 꼽히는 만큼 새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싸게 구할 수 있는 ‘기회’라는게 주택업계 시각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화정 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재추진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조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구청은 지난 2007년 11월 화정동 778번지 일대 주택가 2만5000㎡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주거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글·사진=김지을 기자 dok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