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남북의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던 판문점 1차 정상회담.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들린 도보다리 위 긴 대화는 한 편의 무성영화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반도 평화의 봄. 4월의 눈부신 햇살은 이제 따스한 가을볕으로 바뀌었다.

9월의 평양은 설렘보다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의 강렬한 추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두 차례 만난 두 정상은 포옹하며 서로를 반겼고, 문 대통령은 순안공항과 거리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을 향해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북한에서 90도 인사는 최고 존엄에게만 하는 게 예법이라서 대통령의 인사가 주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라고 한다.

첫날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단연 카퍼레이드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무개차를 타고 평양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는 장면은 다음 날 전국 신문의 1면 사진을 통일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파격은 둘째 날에도 이어졌다. 두 정상은 백화원 영빈관에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핵시설 영구 폐기를 통한 비핵화와 사실상 남북의 ‘종전선언’이라 할 수 있는 군사 긴장 완화 조치, 그리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실현하고 한민족의 공동 번영을 위한 남북 경협이 담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서 나온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이렇게 좋은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또한 문 대통령이 5·1 경기장에서 집단 체조를 관람한 뒤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연설할 때 15만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낸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백미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등정. 두 정상은 20일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맞잡아 들어올렸다. 백두산 날씨는 두 정상의 표정만큼이나 화창해 한반도의 앞날이 쾌청함을 알렸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역사적인 순간들이 이벤트를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초석이 되고 8천만 민족에 멋진 추석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유제관 편집1부장·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