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 충장로, 제봉로, 의재로, 죽봉로, 필문로, 회재로, 사암로, 고봉로…. 광주 시민들이라면 출퇴근길 시내버스 안내 방송을 통해 몇 번은 들었을 도로명이다. 한데 이러한 광주의 도로 명칭과 구간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10여 년 전 광주에서 택시 기사들을 대상으로 광주 도로 유래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민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금남로(錦南路)의 경우 대체로 구간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유래와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과 함께 공적을 세웠던 문과 무를 겸비한 정충신의 호가 바로 ‘금남’이다.

충장로(忠壯路)는 알려진 대로 임란의 명장 김덕령의 시호에서 연유한다. 제봉로(霽峰路) 역시 의병장 고경명의 호를 따서 붙여졌는데 남광주역사거리에서 장동로터리를 거쳐 광주역까지의 구간이다. 한말 의병장이었던 김태원의 호를 딴 죽봉로(竹峰路)는 농성지하도부터 동운고가까지이며, 고려 말 정지 장군의 시호를 딴 경열로(景烈路)는 광주역부터 농성지하도까지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의 호를 도로 이름으로 붙인 곳도 많다. 흑석사거리에서 장성의 경계인 광산동까지 도로인 고봉로(高峯路)는 호남 유학사를 대표하는 기대승의 호에서 유래했다.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의병 활동을 펼쳤던 박광옥의 호를 딴 회재로(懷齋路)는 백운동부터 칠석동까지 구간이다.

요즘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20년 만에 귀향한 필문 이선제 묘지(墓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예문관 제학을 지냈으며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던 대학자다. 그의 묘지는지난 1998년 밀매단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이를 모르고 구입했던 소장자의 뜻에 따라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됐다. 조선대부터 광주교대까지의 팔차선 도로를 ‘필문로’(筆門路)로 칭하는 것은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함이다.

때마침 광주 비엔날레 기간이다. 미술 관람에만 그치지 말고 박물관에도 들러 우리 문화재도 봤으면 한다. 모든 예술은 자국의 고유한 문화로부터 파생된다. 차제에 역사와 의미가 담긴 도로를 모티브로 시 차원의 예술제도 고려할 만하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