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로 원래는 문과 시험을 준비했다. 인생이 바뀐 것은 보성 군수 방진과의 만남이었다. 조선 명궁 중의 한 명인 방진에게는 귀하게 여기는 외동딸이 있었다. 이순신의 활쏘기 실력을 잘 아는 방진은 병조판서 이준경에게 중매를 넣어 이순신을 사위로 맞았다. 21세에 두 살 어린 신부를 맞은 이순신은 장인의 권유와 경제적 후원으로 무과 시험을 준비해 32세에 급제한다.

방진의 딸은 유달리 총명했다. 12세 때인 어느 날 방진의 집에 화적이 들었다. 방진은 화적에게 쏘기 위해 딸에게 화살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화적들이 계집종을 매수해 집안의 화살을 모두 빼돌려 놓은 뒤였다. 이때 딸이 꾀를 내 베 짜는 데 쓰는 대나무 다발을 화살인 양 다락에서 힘껏 던지며 “아버님, 화살 여기 있습니다”라고 소리치자 방진의 활 솜씨를 두려워 한 화적들이 줄행랑을 쳤다. 이 일이 있은 후 보성 지역에는 화적들이 들어오지 못해 태평해졌고 그녀의 이름도 방태평으로 불렸다고 한다.

방태평으로 불린 방씨부인은 구국의 길에 나선 이순신의 내조를 위해 평생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전쟁 통에 셋째 아들을 잃는 아픔도 견뎌야 했다. 선조는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자 우의정에 추대하고 방씨부인을 정경부인에 봉했다. 정경부인은 정·종 1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최상급 품계다. 방씨부인에게 내린 교지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방씨부인의 실명이 방수진으로 확인됐다. 전남 이순신연구소가 현충사에 보관 중인 국보76호 ‘서간첩’을 분석한 결과다. 서간첩은 충무공이 영암에 사는 연주 현씨 문중 지인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모은 기록물로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란 문구도 여기에 들어 있다.

보성은 이순신과 방씨부인이 신혼 시절을 보낸 곳으로 인연이 깊다. 보성군은 방씨부인의 위대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지난해 쇼케이스로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11월 갈라쇼로 공연한다. 500년 전에 지은 이름이 지금 들어도 세련돼 보인다. 뮤지컬 ‘방씨부인’도 타이틀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장필수 전남본부장 bun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