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의 가치는 1만 마르크로 뛰어올랐다. 어제는 자살이 한 건 밖에 없었다. 대신 두 건의 파업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오랜 협상 끝에 인상된 봉급을 받았지만 그동안 돈의 가치가 하도 하락해서 이제는 그것으로 일주일에 1리터의 우유도 살까 말까 하게 됐다. 다음 주에는 아마 단지 성냥 1갑밖에는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실업자는 15만 명으로 상승했고, 불안 상태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었다.”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의 소설 ‘검은 오벨리스크’의 한 대목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를 묘사한 이 소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인플레)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소설에선 화폐의 가치가 너무도 떨어지는 바람에 수십 마르크에 불과했던 상품들의 가격이 불과 몇 주나 몇 달 만에 수십조 마르크로 폭등한다. “우리 망한 거야, 아니면 부자가 된 거야? 독일인 중에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놈은 아무도 없을걸?”이라는 대목에는 인플레에 망연자실한 독일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소설에 등장했던 ‘인플레’의 생경한 모습이 요즘 베네수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는 단기간에 물가가 치솟고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상품 가격이 평균 26일마다 두 배씩 뛸 정도다. 자국 통화인 볼리바르의 경우, 2년 전만 해도 최고액권이 100볼리바르 지폐였으나 1년 만인 지난해 말 무려 10만 볼리바르 지폐가 발행됐다. 하지만 당시 암시장에서 10만 볼리바르는 단돈 2.5달러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100만%로 예상되고 있다.

인플레는 ‘화폐의 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전반적·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 현상’을 의미한다. 최근엔 통화 팽창보다는 ‘물가 수준의 지속적 상승 과정’으로 정의되고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단 며칠, 몇 달 만에 1억~5억 원 이상 급등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바로 이런 게 인플레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실질 소득이 받쳐준다면야 별 문제가 아닐 테지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