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포츠/연예
오피니언
기획시리즈
사설
칼럼
이홍재칼럼
기자노트

<이홍재 세상만사> 예전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들

2018. 08.31. 00:00:00

“장난감을 받고서는/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다 기어이 부숴 버리고/ 내일이면 벌써 장난감을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당신은 내가 드린 마음을 귀여운 장난감인 양/ 조그만 손으로 가지고 놀 뿐/ 내 마음 고뇌에 떨고 있는 걸 살피지 않네”(헤르만 헤세의 ‘아름다운 사람’)
이 시(詩)를 보면 사람들은 70년대 초 가수 서유석이 불러 크게 히트했던 노래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한데 서유석은 이 시를 차용해 개사(改詞)하면서 왜 ‘돌보지 않는 나의 사람아, 나의 여인아’라는 구절을 추가한 것일까. 아마도 내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철부지 아름다운 사람’을 향한 ‘푸념의 노래’로서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고 싶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은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기만 한데 그래서 더 부서질 것 같은 나의 심장! 하지만 고뇌에 떨고 있는 내 마음을 몰라주어도 당신은 영원한 내 사랑! 나는 서유석이 작곡한 이 노래의 가사가 소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시(詩)인 줄을, 예전엔 꿈에도 몰랐었다.
하긴 우리가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게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날마다 금남로를 오가면서도, ‘금남로’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당시 큰 공을 세운 금남군(錦南君)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군호(君號)에서 따온 것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밖에 없는 줄 아는 사람도 많을 터이지만, 정 장군 또한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은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그건 그렇고, 나에게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 그중 한 여자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선물로 책을 보내 주며 또 한 여자는 거의 매일 ‘카톡’을 통해 내게 시(詩)를 보내 준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터이지만, 둘 다 50대 초반의 지성과 미모를 갖춘,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여인들이다. 엊그제에도 시를 몹시 좋아하는 그 여인으로부터, 시 한 수를 배달받았다. 오영수 시인이 쓴 ‘독립문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산문시(散文詩)다.
일본이 독립문을 놔둔 까닭
“사람들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서대문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알겠지/ 누구나 다 그렇게 알고 있겠지// 독립문 편액을 매국노 이완용이가 썼다고 하면/ 어~ 진짜? 말도 안 돼!/ 이러고 말겠지” 이렇게 시작한 시는 ‘독립문 건립의 비밀’을 차근차근 알려 준다.
“독립문 세워진 자리가 청나라 사신 영접하던/ 영은문을 부수고 세웠다는 것을 알아도/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겠지// 하지만 독립문을 세운 이유가/ ‘청국은 가고 일본은 오라’/ 하는 의미에서 세운 것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 그러면서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일본이 독립시켜 준 것에 대한/ 보은의 차원에서 강제케 한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제야 어떤 표정을 지을까”라고 묻는다.
시인은 독립문에 대한 우리의 무지(無知)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독립문이/ 일본에 대한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운 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해방되고/ 역사편찬위원회를 친일학자 이병도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장악하고/ 그들이 국사 교과서를 집필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하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운 적이 없으니/ 가뜩이나 책 안 읽는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 길이 없거든“
이 시를 끝까지 읽으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다 인용할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한 대목만 더 보기로 하자. “독립문이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걸 아는/ 이 나라 국민은 얼마나 될까/ 하긴 모르면 어때/ 살아가는 데 불편한 거 하나도 없는데” 살아가는 데야 아무 불편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 엄청난 비밀을 안 이상,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해마다 8월이 오면, 권순진 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설과 함께 이 시를 소개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친 김에 그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자. “여기에 기술된 독립문의 비밀 등은 대체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지만…. 1963년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은 1896년에 이완용·서재필 등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조선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한 돈으로 1897년 세웠다.” 결국 당시 ‘독립’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며 ‘독립문’은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건축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시인은 또한 ‘독립협회’란 단체가 간판으로 내세운 이상재·주시경을 제외하면 서재필과 친구였던 이완용이나 윤치호 등 거의 친일 인사로 채워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독립운동가쯤으로 알고 있는 서재필은 사실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고 밝힌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학자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이미 ‘서재필 신화-왜곡된 진실들’이라는 글에서 상세히 지적한 바 있다.
서재필 그는 미국인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서재필은 1890년 이후 자신을 서재필이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해 미국 시민권을 얻은 이후 ‘필립 제이슨’이란 이름으로 철저히 미국 시민으로 살았던 서재필은, 사실 존경할 만한 인물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소한 사실이지만. 서재필은 충남 논산 출신이며 그의 생가라고 해서 각광을 받고 있는 보성은 그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물론 그의 어머니인 성주 이씨가 친정에 가서 그를 낳았으므로 보성이 그의 생가임에는 틀림없다)
어찌 됐든 주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서재필은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누었을지언정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 필립 제이슨이었다. 그가 미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 후 고국 땅을 밟은 것은 다 합해서 5년을 넘지 못한다. 그것도 두 번 다 미국에서보다 훨씬 넉넉한 봉급과 지위를 주었을 때에 한해서였다.”
아, 그랬었구나. 서재필이 그런 사람이었구나.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서재필을 그처럼 추앙했었구나. 일제가 독립문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던 것도 다 그런 까닭이 있었구나. 우리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독립문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적이겠거니 했었구나.
엊그제 8월29일은 우리가 국권을 일본에 강탈당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할 국치일(國恥日)이었다. 올 여름 내내 그 지겨웠던 무더위와 함께 ‘해방의 날’과 ‘수치의 날’이 함께 들어 있는 8월도 가고 있다. 가난이 죄가 아니듯이 무식도 죄는 아니겠지만, 역사에 대한 무지는 죄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즈음이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