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은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무세이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그리스 여신들인 무사이를 모시던 곳이었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이 신전 기능과 더불어 학술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 무사이들은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각각 9개 분야를 관장했다. 서사시, 역사, 찬가, 음악, 춤, 서정시, 비극, 희극, 천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의 현재와 과거, 미래가 공존하는 기억의 장소들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통합유럽연구회가 펴낸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보는 유럽의 역사다. 지금까지 연구회는 ‘인물로 보는 유럽 통합사’, ‘유럽을 만든 대학들’ 등을 발간했다.

유럽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야기의 보고’라는 수사를 넘어 담론과 사유의 공간, 문화정체성을 지지하고 견인한다. 언급한대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은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책은 갈등과 협력을 통해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29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조명한다. 고대에서부터 중세와 근대, 현대를 망라하는 것은 물론 미래의 박물관까지 아우른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흥미로운 전시실이 있다. 바로 영국에 약탈당한 유물의 복제본이 있는 4층 파르테논 전시실이 그것. 이는 “파르테논 조각들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어디인지 관람객에게 물음으로써 문화재 반환에 대한 그리스 측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를린 눈물이 궁전’은 독일 분단의 일상을 재현하는 곳이다. 현대사 박물관으로서의 이곳의 정체성은 많은 사람들과 기억을 공유하는 데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11년 눈물의 궁전 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해 동독에서 살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저도 부모님과 함께 자주 이곳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할머니와 매년 이곳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해마다 할머니는 늙어가셨고, 우리는 다음 해에 할머니를 또 뵐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이러한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슬픈 일이었습니다.”

메르켈의 말은 독일과 같은 분단을 겪은 우리에게는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픈 기억을 ‘눈물의 궁전’이라고 명한 역설과 은유는 그들이 얼마나 아픈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박물관 기원’에서는 최초의 박물관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본다.

2부 ‘도시/로컬’에서는 파리의 역사와 파리지앵들의 이야기인 ‘파리 카르나발레박물관’, 군주의 미술관에서 시민의 미술관이 된 ‘피렌체 우피치박물관’을 다룬다.

3부와 4부는 ‘국가’와 ‘유럽/ 유럽통합’을 매개로 한 박물관을 들여다본다. 전자에는 루브르의 잃어버린 시간이 담긴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과거 영화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런던 대영박물관’ 등이 소개돼 있는데, 후자에는 고대와 중세를 잇는 ‘파리 클뤼니박물관’과 광기의 상흔, 야만의 기억이 투영된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박물관’ 등이 담겨 있다.

5부는 미래의 박물관을 상정하는 글이 주를 이룬다. 박물관의 플랫폼에서 박물관들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유로피아나 프로젝트’로, 한마디로 디지털 도서관을 함의한다.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이 원본의 디지털을 제공해, 가치의 재해석 등 사회적 담론을 확장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과거의 찬란한 유산과 참혹했던 순간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싹트는 희망의 기운……. 박물관은 이 모든 다채로운 순간들을 저마다의 이야기로 엮어 담아내고 방문객과 소통한다. 그래서 시공을 초우러한 소통을 통해 방문객은 때로는 압도되고, 때로는 숙연해지고, 때로는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가지기도 한다.”

<책과함께·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