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채식주의자
2018년 08월 20일(월) 00:00 가가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은 옛날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조선 시대에 한 남자가 야생 거위를 잡아다가 집에서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는 금방 뚱뚱해져서 날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그 남자는 거위를 마당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거위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한 열흘쯤 굶었을까. 한결 몸이 가벼워진 거위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남자는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성호 이익(1681~1763)은 ‘관물편(觀物篇)’에 이를 기록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나의 주식(主食)은 야채와 과일이다. 아침과 점심을 그렇게 먹는다. 약 3년이 되었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위식도 역류 증세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증세가 나타나더니 5~6년 전부터 심해졌다. 식사만 하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신물이 자주 올라오고, 트림이 많이 났다. 때로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식도와 위를 연결하는 괄약근이 너무 약해져 버린 것이다. 나름 운동을 하고 체중을 뺐는데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50년 된 식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에는 밥과 면류 그리고 육류를 끊고 야채와 과일만 먹었다. 증상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고욕이었다. 먹는 낙이 없어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힘이 없어졌다. 평생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채식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시도 끝에 약 2년 전부터 아침과 점심 두 끼는 야채와 과일을 먹고, 저녁은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자유롭게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 ‘유연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3분의 2의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덕분에 위식도 역류도 사라졌고, 몸도 가벼워졌으며, 미각이 살아나서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고 있다.
‘불일치 질환’(mismatch disorder)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몸과 환경이 서로 맞지 않아 생기는 현대인의 질병을 말한다. 진화의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와 몸은 여전히 구석기 시대에 맞춰져 있다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공동 조상까지 올라가면 인간은 약 500만 년 가깝게 수렵 채집 생활을 했고, 최근 1만 년 들어 정착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유전자에는 500만 년 동안의 인류의 생활사가 저장되어 있는 셈이다.
즉, 우리의 몸은 하루에 10여km 이상을 움직이고, 육류와 과일 그리고 야채류를 섭취하며, 광활한 자연환경에서 생활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환경은 어떤가! 매일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과도한 열량을 섭취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만 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몸은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 질환은 대개 비전염성 만성 질환이다. 대표적으로 비만, 근시, 2형 당뇨병, 디스크, 위식도 역류, 평발, 고혈압 등을 들 수 있다. 정신 질환도 예외가 아니다. 우울증, 불안증, 주의력 결핍증, 식이 장애 등 많은 정신 질환들 역시 야생 사회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불일치 질환에 해당된다.
만약 ‘관물편’에 나오는 야생 거위가 계속 인간의 음식에 길들여졌다면 그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 빤하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잊은 채 피둥피둥 살이 찌다가 결국 어느 잔칫날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날,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 지혜로운 거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야생 거위에 비해 어떤가? 혹시 나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우뚱거리며 아무 음식이나 먹는 인간거위가 된 것은 아닌지!
‘불일치 질환’의 치유는 간단하다. 약을 먹을 게 아니라 몸에 맞는 환경으로 바꿔야 한다. 그럼, 우리 모두 귀농을 하거나 구석기 시대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다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을 좀 더 생태적 환경으로 바꿔 나가고, 우리의 생활 방식과 식습관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효율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운전하는 시간 대신 걷는 시간을 늘리고, 먹는 음식의 양과 식단에 변화를 주고,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려 가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말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즉, 우리의 몸은 하루에 10여km 이상을 움직이고, 육류와 과일 그리고 야채류를 섭취하며, 광활한 자연환경에서 생활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환경은 어떤가! 매일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과도한 열량을 섭취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만 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몸은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 질환은 대개 비전염성 만성 질환이다. 대표적으로 비만, 근시, 2형 당뇨병, 디스크, 위식도 역류, 평발, 고혈압 등을 들 수 있다. 정신 질환도 예외가 아니다. 우울증, 불안증, 주의력 결핍증, 식이 장애 등 많은 정신 질환들 역시 야생 사회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불일치 질환에 해당된다.
만약 ‘관물편’에 나오는 야생 거위가 계속 인간의 음식에 길들여졌다면 그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 빤하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잊은 채 피둥피둥 살이 찌다가 결국 어느 잔칫날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날,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 지혜로운 거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야생 거위에 비해 어떤가? 혹시 나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우뚱거리며 아무 음식이나 먹는 인간거위가 된 것은 아닌지!
‘불일치 질환’의 치유는 간단하다. 약을 먹을 게 아니라 몸에 맞는 환경으로 바꿔야 한다. 그럼, 우리 모두 귀농을 하거나 구석기 시대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다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을 좀 더 생태적 환경으로 바꿔 나가고, 우리의 생활 방식과 식습관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효율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운전하는 시간 대신 걷는 시간을 늘리고, 먹는 음식의 양과 식단에 변화를 주고,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려 가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말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