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다혜 작가가 다루는 소재는 지역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2015년부터 세계 난민, 아이티 지진, 전쟁, 죽어가는 동물 등에 주목했던 박 작가는 “인터넷 등을 통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모습들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꺼려하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다”고 말한다.

산수미술관(관장 장민한 조선대 교수)에서 ‘낯선 죽음의 풍경’(28일까지)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박 작가가 이번에 화폭에 풀어놓은 작업 소재는 ‘고래’다. 그림 속 고래는 북극곰들의 먹이가 돼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곰들의 식사), 포클레인이 쏟아내는 모래더미에 묻혀 죽음을 맞이하거나(고래무덤), 누군가에게 포획돼 자유를 잃어버린 모습(고래 산)이다.

작가는 죽어가는 고래를 통해 세상 고통에 무관심한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실적 묘사와 더불어 상상이 가미된 공간에 ‘죽은 고래’를 배치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사건의 심각성에 집중하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박 작가는 ‘고래’가 인간의 불안과 존재론적 고민을 담고 있는 존재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불안해하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도 했다. 고래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 받는 존재와 어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 의해 어떻게 최악의 밑바닥으로까지 떨어질 수 있는 지 그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도 했다.

그녀는 재료 실험에도 열심이다. 초창기 목탄 작업을 주로 진행했던 그녀는 이번 작업에서 유화 물감을 사용하되, 두텁게 계속해서 색을 쌓는 고전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기름을 많이 사용, 목탄처럼 가장 바닥에 깔린 색들도 캔버스 위로 조금씩 색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작업했다.

박 작가는 광주 미술 담론의 활성화를 목표로 올초 개관한 산수미술관이 기획한 ‘도전과 실험 작가’ 시리즈 첫번째 주자로 초대됐다. 조선대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삿포르 레타라 갤러리 초대전,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초대전을 열었다. 062-234-9789. /김미은 기자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