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대세다. 지난 2012년 손학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도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철학자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자는 말이나 다름 없다.

요즘 미국에서 뜨거운 용어는 ‘한정 노동’(work with limits)이다. 자신의 행복과 개인적 취미 등을 즐기기 위해 일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뜻이다. 한정 노동자들은 직장 등에서 정기적 급여를 받는 ‘완전 고용’의 형태를 거부하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자청한 근로자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자국 내 파트타임 노동자 2800만 명 가운데 600만 명을 한정 노동자로 분류한다. 이들은 통계상 빈곤층으로 분류되지만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기 때문에 행복지수는 높다고 한다.

한정 노동이 가능한 것은 ‘긱 경제’(gig economy)라는 새로운 생태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앱(애플리케이션: application)과 웹사이트(web site) 등을 기반으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경제 구조다. 택배 회사에서 일자리 앱 등에 배달이라는 일감을 올려놓으면 노동자가 선택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구조에서는 고용주인 사용자와 용역을 제공하는 근로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나라에도 미국과 유사한 근로자들이 있지만, 이들이 완전 고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한정 노동은 낯선 개념이다. 완전 고용을 정상으로 보고 파트타임, 비정규직은 불완전 고용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비정규직’, ‘디지털 프리랜서’라는 부정적 용어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정 노동은 그러나 일단 노동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는 될 것 같다.

7월부터 본격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칼퇴족’이 늘고 있다. 노동 시간 단축이 대세라면 그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녁의 삶’이 빈곤해지지 않으려면, 준비 없이 맞는 잉여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윤영기 사회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