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어도 설레는 그 도시,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의 고향인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러시아 월드컵 한국 첫 경기가 열렸다. 혼이 팔려 경기에 몰입한 건 아니지만 아쉽고 답답한 경기였다.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에 위치한 로스토프나도누에서는 멕시코와 2차전을 치렀다. 문전에서 벗어난 슈팅과 선수의 무리한 태클을 볼 때는 흔히 말하듯 “밥 먹고 축구만 했을 선수들이 왜 저러나…”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경기 후 사나이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짠하고 마음 아팠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저명한 고고학자인 미국의 존 폭스는 공을 쫓아 달리는 단순한 놀이가 오늘날 수천억 달러의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찾아 공놀이에 관한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고 집필한 저서 ‘우리는 왜 공놀이에 열광하는가’에서 묻고 답한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굴리고 차고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가? “한 마디로, 재미있으니까”란다.

재미도 재미지만 월드컵 축구가 있던 그날 밤 온 국민이 하나 된 열망은 “우리 팀 공이 더 길었으면…”하는 간절함 아니었을까?

멕시코 출신의 현대미술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1962년~ )의 작품 ‘긴 공’(1993년 작)을 보면 작가도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축구공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아니면 “슛! 골 인!”되는 순간의 모습을 공의 반복된 이미지를 통해 길게길게 늘어나 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때만 반짝 축구공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우리와 달리 일상은 물론 예술에서도 축구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나라가 멕시코임을 알게 해주는 작품인 것도 같다.

소재나 장르에 제한받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기로 이름난 오로즈코는 전 세계를 유랑하듯 돌아다니며 작업하는 작가답게 각 지역에서 만나는 오브제를 소재로 사물의 움직임, 확장, 반복, 순환을 고민하는 작품을 새로운 발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