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우리나라에 라면이 첫선을 보였으니 벌써 55년이 됐다. 세계 라면협회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 평균 36억 개의 라면을 소비하는 것으로 돼 있다. 1인당 74.1개꼴,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라면에 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처음 맛본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70년대 중반이었으니, 라면은 귀한 음식은 아니더라도 자주 맛볼 수 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솥단지에 라면을 끊이는 날이면 잔칫날처럼 기뻤다.

군대에선 힘든 훈련을 잊게 해 준 힐링 음식이었다. 야전 훈련을 나가 선임하사 몰래 반합에 끓여 먹는 라면은 천상의 맛이었다. 1리터 정도 되는 반합에 라면을 3~4개까지 넣고 끓였으니 국물이 거의 없는 찌개 수준인데도 짠 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봉지째 끓여 먹었던 ‘뽀글이’ 맛도 잊을 수 없다. 겨울철 막사에서 불침번을 설 때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봉지를 뜯고 물을 부어 스팀 난로에 올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온도가 낮아 15분 이상은 올려놓아야 하는데 불어 터진 컵라면 같지만 비교할 수 있는 음식은 없었다.

일요일 아침, 단체로 구내식당에서 먹는 라면은 일종의 떡라면이었다. 한꺼번에 400~500명 분량의 라면을 불로 끓이는 것은 불가능해 스팀으로 찌는데 줄을 서서 배식을 받을 때는 불어 터진 면발이 엉겨 붙어 떡처럼 변했지만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라면은, 특히 힘든 생활의 연속인 군대에서 먹는 라면은, 맛도 맛이지만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는 것 같다.

김훈은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라면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혀 있는 음식이다”라고 표현했다.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히는데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고 했다.

장병 급식용 라면이 7월부터는 50종류로 다양해진다고 한다. 현재는 한 업체에서 10종류의 라면을 공급하는데 앞으로는 4개사, 50 종류의 라면을 공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라면의 추억도 다양해질까.

/장필수 전남본부장 bun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