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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생각’] 도시의 나무에게 말하는 법

2018. 06.07. 00:00:00

20년 전 이 도시로 집을 옮겼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죽나무 가로수였다. 새로 조성한 도시, 새로 심은 가로수여서 그리 큰 나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잘 자라서 이룰 무성한 초록 풍경의 기대만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웠다.
가죽나무는 별다른 쓰임새가 없어 비교적 천대받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도 “줄기가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비비 꼬여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무”라며 가죽나무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라고 했다. 그러나 장자는 목수에게 쓸모없는 나무라 해도 다른 입장에서 보면 여느 나무 못지않게 훌륭할 수 있다는 여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그 풍요로운 생김새만으로 가죽나무를 ‘천상의 나무’(Tree of Heaven)라고 예찬한다. 가죽나무는 곧은 줄기가 굳건할 뿐 아니라, 줄기 위쪽에서 사방으로 펼치는 가지가 유난히 싱그럽고 넉넉한 생김새를 가졌다는 점이 목재로서의 쓰임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길가에 줄지어 선 가죽나무 가로수는 도담도담 잘 자라났다. 도심의 공해와 매연 속에서도 나무는 어김없이 초여름이면 가지 끝에서 노란 꽃차례를 무더기로 피워올렸고, 잘게 피었던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며 남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느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싱그러운 가죽나무 터널을 이루리라 하는 기대가 차츰 부풀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가죽나무를 바라보며 지내던 3년 전의 어느 봄날 아침,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그토록 기특해 보이던 가죽나무들이 귀청을 찢는 전기톱 소리와 함께 한 그루 두 그루 넘어갔다. 놀란 마음에 시청의 가로수 담당자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가죽나무를 천상의 나무로만 생각하고 가로수로 심던 그때에는 몰랐던 사정이 있었다며 담당 공무원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지를 넓게 펼치는 나무는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부러지기 쉬워서, 보행자나 자동차에 큰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들어온 붉은꽃매미의 서식처로 가장 좋은 나무가 가죽나무라고도 했다. 도시민으로서 승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안타까웠다. 사람이나 자동차의 통행이 한산한 이면도로 쪽의 가죽나무 몇 그루를 남겨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죽나무 베어낸 자리에는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고 잘 견디는 이팝나무가 채워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가죽나무에 대한 안타까움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한데 그때 베어 내지 않고 남긴 이면도로의 가죽나무 가로수는 애초의 기대처럼 잘 자랐다. 마치 사람에 의해 생명을 얻었다가 사람의 손에 죽어간 나무들의 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무성하게 자랐다. 몇 그루는 4차선 도로의 중앙선 너머까지 가지를 뻗었다. 맞은편의 나뭇가지와 만나면서 곧 싱그러운 가죽나무 터널을 이룰 기세다.
하지만 여기는 도시다. 낙관은 아직 이르다. 줄지어 서 있는 20여 그루 가운데 일부는 수세(樹勢)가 무척 약했다. 무성하게 이어지던 가로수 무리의 한쪽 나무는 봄 지나도록 초록 잎 한 장 돋우지 못했다. 죽은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죽은 두 그루의 가죽나무가 서 있던 자리는 인근에서 맛나기로 소문난 식당 바로 앞이다. 밑동에는 식당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워낙 유명한 식당이어서 순번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식당 문 앞 가죽나무 곁에 항상 즐비했다. 나무가 죽은 이유는 분명했다. 굳이 해꼬지를 하지 않았다 해도 나무는 사람들의 발길을 견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에서 조금씩 새어 나온 염분도 견디기 힘들었던 게다.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산다는 게 도시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무가 죽음으로 보여 주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지나는 행인을 다치게 하지 않아도, 혐오 곤충인 붉은꽃매미가 윙윙거리지 않아도 도시의 나무는 삶을 이어 가기 어려웠다.
시인 손택수는 도시의 나무에 핀 꽃을 보고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나무의 수사학’ 중에서)라고 썼다. 반어법이 아니라, 아무런 꾸밈없이 그저 도시에 꽃이 피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정녕 올 수 없는 것인가,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반어인지 직유인지 은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무성한 이즈음, 나무와 평화롭게 나눌 수 있는, 진정성이 가득 담긴 참말이 그립다.
<나무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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