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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5월을 보내며 떠올린 몇 가지 생각들

2018. 06.01. 00:00:00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섭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눈물짓는데. 뻗쳐오르던 우리의 보람도 서운케 무너지고 말았으니. 아, 38년 전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또다시 5월을 떠나보낸다. 벌써 서른여덟 번째다. 꽃들이 하나둘 지고 있다. 봄날이 간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그거야 경지에 오른 시인의 말일 뿐. 때아닌 낙화(落花)의 애절함을 겪었던 우리는 오늘도 ‘바람’을 찾아 헤맨다.
삼백예순날 하냥 슬픔에 젖어 살아 온 세월. 살아남은 우리는 한없는 부끄러움 속에서도 그 모진 세월을 견뎌 왔다. 다만 가슴속에 비원(悲願) 하나는 남겨 두었다. 꼭 찾아내리라. 숱한 생명을 앗아간 그 광풍(狂風)의 근원을 찾아야 하리라. 무고한 광주 시민을 학살한 원흉(元兇)을 꼭 찾아 처단해야 하리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가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 다 안다. 전두환. 다만 우리는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뒤늦게나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돌이켜 보건대 당시 공수부대의 만행은 끔찍했다. 맨몸의 시민들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날선 대검으로 마구 찌르고. 이들의 만행을 피해 골목길로 숨어들면, 그 아비규환(阿鼻叫喚) 속에서도 노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먼 일이당가. 6.25 때도 이라지는 않았는디…”

김종배는 왜 중도 포기했나

6.25 하면 ‘부역’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연관 검색어’로 자동 생성된다. 그 당시 적군에 부역한 사람들은 가혹한 테러를 당하거나 ‘즉결 처분’ 형식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부역’(附逆)이란 역적(逆)에게 붙었다(附)는 뜻이다. ‘반역 집단을 돕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을 말한다. 원래는 왕조시대 왕권에 대항하는 행위 등을 지칭했는데, 6.25전쟁 때 널리 쓰인 이후 우리의 뇌에 무시무시한 단어로 각인됐다. 부역자는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에 기댄 사람들이다. 박정희·전두환 등 독재 정권을 창출하고 지탱하는 데 적극 협력했던 이들도 부역의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지금도 ‘부역’이란 말은 ‘적에게 붙어먹은 세력’이란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최근만 해도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용섭(67) 후보에 대한 ‘군사정권 부역’ 논란이 있었다. 특히 선거 초반 경선에 나섰던 최영호 전 남구청장은 “이 후보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5년 12월부터 청와대 사정행정관으로 근무했다”며 “결국엔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했을 텐데, 현재 5.18과 광주정신에 비춰 봤을 때 정체성에 적합한지, 시대정신에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고은(高銀)시인의 ‘만인보’(萬人譜)에 등장하는 ‘5.18 사형수’ 김종배(64) 전 국회의원도 얼마 전 이에 가세했다. 민주평화당 간판으로 광주시장 도전에 나섰던 그는, “전두환 정권에 협력했던 자의 사진이 광주 시청에 걸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랬던 그가 돌연 출마를 포기했다. 그는 왜 그만두었을까. 아마도 당선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컸을 것이다. 전폭 지원을 약속하며 출마를 권유했던 당 지도부에 대한 어떤 섭섭함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인에게 밝힌 출마 포기의 변(辯)은 이랬다. 당선보다는 낙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 ‘5.18사형수 대 전두환 비서’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당에서야 그러한 구도로 갈 경우 승산이 있다고 봤겠지만, 선거에서 패할 경우 ‘5.18 세력의 패배’로 인식되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외부에서 광주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광주정신이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여하튼 그의 중도 하차로 광주 시장 선거는 다시 밋밋한 구도가 되고 말았다. 강력한 경쟁자가 없다 보니 벌써부터 그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의 ‘전국 최다 득표’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김칫국을 마시든 말든 그거야 일단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자.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용섭 후보는 과연 ‘광주의 정체성’에 적합한 인물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고개를 가로젓는 시민들이 많았다. 그동안 광주일보가 세간의 오해를 무릅쓰고, ‘광주 정신’과 ‘광주의 정체성’ 그리고 ‘후보들의 역사관’을 강조해 온 것도 이러한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했다는 사실만을 놓고 ‘전두환 부역자’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직업공무원(4급 행정관)으로서 인사 발령에 따라 그곳에서 근무를 했을 뿐’이라면 그만일 테니까. 이 후보 자신도 “비서 시절 청렴도 제고 업무를 했을 뿐이며 공직에 있는 동안 5.18에 결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광주시장 이용섭’ 괜찮을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아무리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장관 등을 거치며 검증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 성지’ 광주에서 시장을 하려 든다면 ‘사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여서 잘 몰랐던 데다, 직업공무원이어서 인사 발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 밑에서 일한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광주시장이 되어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로부터 이런 정도의 입장 표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당선이 유력하다 보니 ‘수석도 아닌 일개 행정관을 지낸 사실을 들어 부역으로 모는 것은 억지’라며 최근 그의 편을 드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광주 시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 지 불과 몇 년도 안 되어 ‘전두환 비서’로 근무했다면, 그 누구라도 그의 역사관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만하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대조적으로 그와는 아주 딴판이었던 이런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가 누구냐 하면, 1978년 사법연수원을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당시 판사나 검사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연수원을 마치고 공군 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중 5.18광주항쟁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정권하에서 법관으로 임용되는 것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얘기의 주인공은 천정배(64) 의원. 그의 나이 20대 중반이었을 때다.
이용섭과 천정배.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였지만 각자 가는 길은 이처럼 확연히 달랐다.<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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