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오월인데/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시간//라일락 향기 짙어 가는데/너는 아직 모르나보다/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피천득 작 ‘창밖은 오월인데’중에서>







언제 초록의 기운이 시작되었나 싶게 벌써 오월의 끝자락이다. 장미 만발하고 라일락 꽃향기 그윽한데 우리를 둘러싼 삶의 현실은 학창시절 수학시간 풀었던 미분 적분보다 더 어렵고 팍팍하기만 하다. 모처럼 한편의 시에서 자연을 향한 격정을 되찾고, 한 점의 그림 앞에서 생명의 환희에 마음 부풀어온다.







서양화가 최영훈(1947~ )의 작품 ‘라일락 환상’(2018년 작)은 아름다운 것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보라색, 연보라색, 흰색의 라일락꽃이 화면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정말로 심장모양을 한 잎사귀가 자연의 조화를 한껏 보여주는 듯하다.

“재작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작업실 정원 라일락 꽃나무가 지난겨울 모진 추위에 얼어서 베어 버려야했기에 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의 라일락’이 되었다”는 작가. 그래서인지 색감도 사연도 더 아련해졌을까. 올 봄엔 그 자리에 라일락 꽃나무 한 그루 새로 심었다고 한다.

지난 2011년 조선대 미대에서 정년퇴직하기까지 국내외 개인전만 23회를 펼쳐왔던 작가는 그간 무등산과 장미를 비롯 계절이 바뀌는 순간 생명으로 충만한 자연의 표정을 아주 세심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그려왔다. 작업실 겸 야외전시장인 ‘훈석원’에서 30여 년 째 꽃과 나무를 가꾸고 그 정원에서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 에게 자연과 만남에서의 감흥은 세월을 받아들이는 연륜만큼 더 풍부해진 색채와 자유로움으로 표현되었다.

작가는 11년 만에 조각가 손연자(1947~ )와 함께 6월5일까지 신세계 갤러리에서 ‘부부 동행전’을 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