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를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쇼윈도에 전시된 다양한 모습의 사내들이다. 80㎝ 높이의 인물 조각상 27개로 구성된 작품 ‘여유로움’. 적당히 나온 배,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다채로운 표정과 스타일의 각기 다른 인물 군상을 바라보며 관람객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지도 모르겠다.

반면 전시장 안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다. 장미, 라일락, 백일홍, 복숭아 나무, 홍매화 등 온갖 꽃과 나무가 감각적인 색감으로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서양화가 최영훈, 조각가 손연자 초대전이 24일부터 오는 6월5일까지 광주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다. 지난 2003년 열렸던 신세계 갤러리 초대전 후 15년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부부전이다.

‘동행’이라 이름 붙인 이번 전시는 1965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만난 이후 50여년이 넘는 세월을 부부로, 예술적 동지로 살아온 두 사람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두 사람은 ‘봄, 꿈, 그리고 여유로움’을 주제로 전시 작품을 구성했다.

최 작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화려한 색채’다. 이번 전시작 역시 자유로운 색채의 변주를 통해 생동하는 삶의 의미를 노래한 신작을 100호가 넘는 대작 위주로 선보인다.

화폭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들은 대촌 작업실 ‘훈석원’(薰石苑)에서 직접 가꾸며 매일 마주해온 것들로 다양한 변주를 통해 약동하는 기운을 전한다. 작가는 꽃과 나무에 구체성을 부여하기보다는 대상의 윤곽을 흐리고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 자연스러운 스며듦과 번짐의 효과도 부여했다.

전시작은 정통적인 캔버스에 작업한 작품과 장지를 활용한 작품이 섞여 있어 대비를 이룬다. 주로 한국화에서 사용하는 장지를 이용한 작품은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며 입체감을 부여하고 침착한 맛도 전한다. 최 작가는 “10여년 전부터 조금씩 해온 작업인데 손은 훨씬 많이 가지만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어 근작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캔버스에 유화로 작업한 작품은 화면 전체를 두텁게 바르는 대신 엷게 붓질한 바탕에 포인트 되는 부분에만 두껍게 물감을 발라 대상을 강조했다. 그밖에 각양각색의 장미를 한꺼번에 쏟아부은 듯한 대작 ‘장미’와 신비로운 보랏빛깔의 변주를 느낄 수 있는 ‘라일락’ 등도 눈길을 끈다.

손연자 작가는 IMF 시절 ‘고개 숙인 남자’ 시리즈 등 다양한 인물 군상 작업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달해왔다.

이번 전시작은 사람들이 정형화된 삶 속에서 한발짝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제작했다. 작품 ‘여유로움’은 27명의 사내들 위로 각양각색의 ‘새 떼’가 날아간다. “나이를 먹었어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꿈을 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다.

작품 ‘휴식’은 30㎝ 크기의 작은 조각상 50여개로 구성된 작품이다. 어딘가에 걸터앉은 사람, 위를 보는 사람, 아래를 보는 사람, 서 있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모습의 그들은 타인이나 사회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두 작품 모두 조각 작품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색채감이 눈에 띈다. 청동과 돌 등을 주재료로 활용했던 작가는 좀 더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합성수지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했다.

손 작가는 “나이를 먹으면서 제 스스로도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졌는데 이번 작품들은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제작했다”고 말했다.

초대 일시 24일 오후 5시. 문의 062-360-1271.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