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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분신’ 장세동 5·18 때 광주에 있었다”
[5·18 계엄군의 고백]<2> 특전사 보안대장 김충립

2018. 05.15. 00:00:00

정호용 사령관, 장세동 작전참모, 김충립 보안대장

5·18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대령)를 맡고 있던 장세동(82)씨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및 특전사 공수여단 병력 투입 시점보다 1주일가량 앞서 광주에 급파됐고, 항쟁 유혈진압 후 서울로 복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장씨는 전두환(88) 당시 보안사령관과 함께 12·12군사반란을 주도하고 전 전 대통령 경호실장,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하는 등 ‘전두환의 분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장씨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유독 광주를 방문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그의 행적조사는 물론 ‘5·18 사전기획설’을 비롯한 의혹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 당시 특전사 보안대장을 지낸 김충립(71·당시 소령)씨는 14일 광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장세동이가 5·18 일주일 전쯤 광주에 내려갔다가 5·18이 끝나고야 서울로 돌아왔다. 장세동이 5·18(유혈진압)의 핵심인물이다”고 밝혔다.
김 전 보안대장은 “12·12 주역 중 한 명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이 5·18이 발생하기 전 특전사 작전참모로 발령난 점, 5·18에 앞서 광주에 급파된 점이 (5·18의 전모를 밝히는데)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전사는 1980년 5월 21일 낮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를 자행하고 항쟁 초기부터 시민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던 부대로, 공수부대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알려져 있다.
정호용(88) 전 특전사령관은 이날 광주일보와 통화에서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 돌아 진압 등을 준비하고 동향을 확인하기 위해 내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특전사 보안대장 김충립씨의 증언에 대해 확인해달라’는 물음에 “장세동이 내게 보고 하고 (광주에) 내려간 것 같긴 한데, 40년이 다된 일이라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보안대장이 말했으면 사실이겠지”라고 덧붙였다.
정 전 특전사령관과 달리 김 전 보안대장은 1980년 5월 10일께 광주로 내려가기 직전 장 전 대령과 만남을 상세히 기억했다. 그는 “장세동이 광주에 간 날은 5월 9일 또는 10일이었을 거다. 그가 어느 날 가방을 메고 내 방에 왔기에 ‘어디 가시오’ 하고 물으니, ‘광주에 간다’고 하더라”며 “‘광주는 왜 가시오’ 물으니, ‘그건 비밀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 전 보안대장은 “장세동이가 대답을 안 해주니 속으로 ‘이번에는 5·17이 터지니 미리 광주에 가는구나 하고 짐작했지. 부마사태 때도 출동했었잖아”라며 “보안사 내부에서는 5월 초부터 ‘5·17비상계엄 확대 후 광주에서 무슨 일이 날 거다’는 말이 파다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그러면서 “장세동이 혼자 가지 않고 박중환 특전사 작전과장을 포함해 하사관, 병 등 총 5명이 내려갔다”, “장세동씨 사무실이 내 방 바로 옆이고 평소 친구처럼 지내오던 터라 뭐 줄게 없나 찾다가 서랍에 있던 땅콩 통조림하고 현금 5만원을 줬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보안대장은 5·18과 관련해 줄곧 장세동의 역할을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세동이가 잠깐 내려갔다 온 게 아니라 광주사태가 끝날 때까지 계속 광주에 있었다. 조만간 5·18을 재조사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반드시 장세동의 행적을 집중조사해야한다”며 “사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노태우, 정호용 이런 사람들은 껍데기였다. 정호용이 되레 장세동의 동향을 살피며 눈치를 봤다. 장세동이가 전두환의 분신이자 실세 중의 실세인데 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 의아하다”고 했다.
김 전 보안대장의 주장에 대해 과거 정부 차원의 5·18진상조사에 참여한 한 인사는 “장세동 역할론, 장세동 광주 방문설 등을 제보받고 조사에 나섰으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문서나 증인이 충분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세동 광주방문 및 5·18사전기획설과 관련해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장세동의 위상이나 무게감에 비해 과거 진상조사, 검찰 수사 및 재판에서 주목도가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5·18진상조사위가 꾸려지면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일보는 80년 5월 장세동씨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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