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하신 스님이 그리울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한번은 스님께서 국수를 끊이시고 설거지 당번을 맡았을 때다. 스님께서 삶은 국수를 불일암 우물가로 가져가 찬물에 헹구어 식히는 와중에, 꼬들꼬들해진 국수 몇 가닥이 우물 밖으로 넘쳐흐르는 물에 떨어졌다. 순간 스님께서 망설임 없이 국숫발을 주워 드시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신도가 수행 잘하라고 보내준 정재(淨財·맑은 재물)”인데. 진정한 수행자란 상담이나 하는 카운슬러가 아니라 설명 없이 행동으로 가르침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본문 중에서)



바로 보이는 앞보다 뒷모습이 그 사람의 본래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감출 수 없는 표정이 있기 때문이다.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가 법정스님과의 인연을 성찰해온 흔적들을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법정스님의 뒷모습’은 지난 2010년에 입적한 법정스님의 숨겨진 일화들을 매개로 써내려간 산문집이다. 그동안 저자는 스님의 일생을 소설화한 ‘소설 무소유’, 수행처들을 찾아다닌 기행 산문집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등 불교와 관련된 책들을 펴냈었다.

이번 산문집은 과거 법정스님의 저서 담당 편집자로, 각별한 재가제자로서 스님과 맺어온 오랜 인연이 바탕이 됐다. 저자는 평소 법문과 일치했던 실제 삶이야말로 법정스님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스님이 남긴 가르침과 일화들을 되새기는 가운데 위대한 수행자 한 분이 어떻게 우리 곁에 살다 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에 수록된 이미지는 영국 킹스턴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고 돌아온 정작가의 딸 윤경 씨가 맡았다.

일반인에게 남겨진 법정스님의 가장 강렬한 모습은 입적 후 치러진 장례식이었다. 전통 불교 장례의식인 다비식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무소유를 실천했던 고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대부분의 고승들이 꽃으로 장식한 운구차에 실려 갔지만 스님은 당신의 유언에 따라 그러지 않았다. 누운 스님을 가사 한 장으로 덮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스님의 그 모습은 송광사를 찾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 나는 뒷모습이 참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에는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거절할 정도로 권력자를 멀리한 이야기, 작가가 불일암에서 스님에게 법명과 계첩을 받고 제자가 된 일화, 스님에게서 낙관 없는 현판 글씨를 받은 이야기, 스님이 대원각 땅을 시주받아 길상사를 창건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아울러 스님의 가풍을 이어받아 저자가 하루하루 일궈가는 화순 이불재의 산중생활,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글 등이 담겨 있다. 주옥같은 글들을 통해 자비와 가르침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날 길상사 법당에서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된 법문의 요지는 생의 덧없음이었다. 덧없음을 깊이 자각해야만 어둔 생에 환한 불이 켜지는 것이 아닐까.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 봄날이 어떻게 오는지 남의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각자가 봄소식을 느껴보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덧없는 생이니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반어법의 가르침이다.”

〈한결미디어·1만50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